
세종큰임금은 절대권력자였지만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았습니다. 세종은 먼저 ‘백성들에게 한자의 올바른 음을 가르치기 위하여(훈민정음) 글자를 만든다.’는 논리로 중국의 간섭을 벗어났습니다. 그리곤 학문적 완성도를 위해 요동에 있던 중국의 학자 황찬을 10여 차례 찾아가 배우게 했습니다. 또 세종은 창제하고 나서 용비어천가, 삼강행실도들로 번역하여 실험하고, 시험제도에 도입하여 기정사실화 하도록 치밀한 작전을 펴 나간 것입니다. 거기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