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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실내악단 예랑(藝娘)의 “또 다른 시작 Ⅰ”

[국악속풀이 28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강화에서 개최한 전국국악경연대회 이야기를 하였다.

강화군은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유서 깊은 고장으로 자연풍광이 아름답고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역사적인 곳이며 특히 단군성조가 천신에게 국운을 빌었다는 마니산의 참성단이 유명하고, 석탑, 동종(銅鐘), 산성, 고려궁지의 사적 등 다수의 문화재급 보물이나 기념물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며 같은 맥락으로 무형의 유산도 발굴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강화 국악경연대회에 폭발적으로 많은 참가자들이 모였다는 의미는 강화 출신의 유지숙 명창이 주관하는 대회라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 그 대회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이 더욱 명예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특히 65세 이상의 노인층이 참여하는 실버분야나, 지역의 명예를 안고 출전한 단체부의 경연은 강화대회의 특색 중 하나라는 이야기, 아쉬운 점은 기관이나 후원단체의 결성이라든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경주를 비롯한 남원, 광주, 전주, 대전, 홍성과 같은 곳에서 볼 수 있었던 관(官)과 민(民)의 뜨거운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 또 하나는 축하 무대를 문화재급 명인, 명창들을 초대해 판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입상자들이 수상소감에서 말하는 것처럼, 강화대회는 깨끗하고 공정했던 대회, 실력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대회, 믿고 참여하고 싶은 대회, 신뢰를 쌓아가는 대회가 분명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강화는 최초 하늘이 열린 곳이고,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며, 특히 대한민국의 유지숙 명창을 낳은 자랑스러운 강화땅에서 열리는 대회여서 의미가 깊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2016년 9월 24일 한국문화의 집에서 가졌던, 가야금 실내악단 <예랑>의 발표회 이야기를 한다. 이날 예랑의 멤버들은 <또 다른 시작>이란 의미심장한 제목을 걸고 무대에 선 것이다. 예랑(藝娘)이란 글자 그대로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낭자들이란 뜻이다.

이 실내악단은 2,000년도 앞뒤에 고 백인영 명인이 제자들의 가야금 실력도 연마시킬 겸,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겸해서 본인과 제자들을 중심으로 만든 실내악단이다. 아마도 그 무렵 어느 날로 기억된다. 고 백인영 명인은 나를 만난 자리에게 실내악단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악단의 이름을 예랑이라 지을 생각이라는 점, 그리고 전통과 퓨전을 중심으로 연주할 뜻을 비치며 조언을 구해 왔다. 나 역시 공부하는 단체, 새로움을 지향하는 연주단체는 필요하다는 격려와 함께 <예랑>이라는 이름이 짧고 고전적이며 예쁘고, 기억하기도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 준 기억이 있다.

예랑이 탄생하여 그해 창단연주회는 대 성공이었다. 기존의 산조나 민요, 고전적 분위기의 창작곡에 머물지 않고, 영역을 파괴라도 하듯, 각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레퍼토리나 무대의상, 무대매너 등 새로운 연주 분위기가 국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창단공연 이후, <예랑>의 이름은 국악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0여 년 나라안팎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정례 발표회도 지속해 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백 명인이 유명을 달리 한 이후부터 는 활동이 뜸해져 다소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백인영은 제자들에게 손재주만을 전해주는 선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넓고 다양한 음악적 경험과 무대 경험의 중요성까지 일깨워 주고 있었던 훌륭한 스승이었음을 알게 한다.  

고 백연영 명인과 내가 가깝게 지내게 된 시기는 198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유대봉제 산조를 이어가던 백인영, 장단의 김청만 등과 함께 매주 토요일 오후, EBS 라디오에서 생방송으로 국악프로그램을 2~3년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신청자가 전화를 통해, 노래나 악기를 연주하면 나는 그것을 듣고 잘 된 점, 고쳐야 할 점들을 평가 해주고, 장원 및 순위를 정해주는 역할을 하였고, 백 명인은 노래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쟁이나 가야금으로 즉석에서 반주를 해 주었으며, 김청만 명인은 장단을 잡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는 각기 다른 높이로 노래를 시작하지만, 백인영은 이를 맞추어가면서 순간적으로 조율을 끝내고 흥겹게 반주를 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대단한 연주자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 재미있게 그 생방송을 함께 했고, 연배도 비슷해서 가끔 뒤풀이를 통해 가깝게 지내게 된 것이 백 명인과 내가 각별해 진 배경이다.

그때도 그렇게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백인영은 정말로 음악적 자질을 타고 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졌고, 방송국의 전속악단, 여성국극단의 악사로 수없이 많은 무대를 경험한 것이 그의 음악을 살찌게 만든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럴까?



그의 음악은 다른 연주자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악보 속에 보이는 음을 최선을 다해 충실하게 악기로 얹는 일반 주자들의 음악과는 달리, 언제 들어도 그의 음악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진한 것이다. 한 마디로 즉흥성이 강한 연주자가 바로 백인영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연주자들이나 감상자들에게 즉흥음악의 달인이라고 소개해 왔던 것이다.

나는 교양강좌로 매학기 그를 초청해서 학생들에게 국악의 또 다른 세계를 안내해 주었고, 학생들은 매우 흥겹게 우리 음악과 만나기 시작했으며, 반응이 좋아서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강좌 가운데 하나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의 UCLA나 중국의 연변대학 등에도 백인영과 예랑의 제자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 예랑이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또 다른 시작>으로 말이다.

백인영이 생전에 아끼던 어린 제자들, 즉 이민영 대표, 배효영 총무, 김해리, 박기연, 김주리, 이성희, 신정혜, 차혜림, 유가희, 최민서, 등이 이제 30대 초, 중반이 되어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정성을 다해 무대를 만들고 손님을 청하는 것이다.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