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후기 구석기시대를 설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유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박편첨두기(剝片尖頭器)라고도 불리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 구석기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언제부터 발견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슴베찌르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슴베찌르개 48점이 출토되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슴베찌르개가 출토되며 이러한 유적은 20여 곳이 넘습니다. 일본에서는 1960년 히라조라(平澤良) 유적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무엇을 이용하여 만들었을까?
슴베찌르개는 후기 구석기 시대에 발견되는 대표적인 소형석기로, 길이가 너비보다 2배 이상 긴 돌날이나 돌 조각을 써서 만들었습니다. 돌날 제작 기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석기의 크기와 형태로 볼 때 자루에 끼워 창처럼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보통 길이 10cm 안팎, 두께 5∼10mm 안팎으로 옆 모양이 직선에 가까운 것이 많습니다. 슴베찌르개의 평면형태가 대칭적이고 측면이 직선에 가까운 점은 이러한 형태가 무게 중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창을 만들어 투척할 때 더욱 안정적으로 날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부 슴베찌르개의 측면에서는 톱니처럼 가공되었거나 날이 부분적으로 손상된 흔적이 관찰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유물은 재가공 되었거나 혹은 창 이외의 생활용구 등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암, 유문암, 혈암, 반암, 응회암 등의 석재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석재는 후기 구석기시대에 주로 활용되었습니다. 도구에 따라 특정 석재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전략은 전기·중기 구석기시대에 석영, 규암 등의 거친 석재를 이용하여 석기를 만드는 방식과는 변화된 양상이었습니다.
인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슴베찌르개는 약 25,000년 전에 분출한 것으로 알려진 AT화산재층이 형성된 이후에 일본의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됩니다. 이러한 발견 사례로 볼 때, 슴베찌르개는 기후가 추웠던 최대빙하극성기(LGM, 18,000 BP)에 해수면이 하강하였을 무렵 일본 열도로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슴베찌르개의 등장과 함께 큐슈지역은 10cm 이상의 대형 수렵구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으며 끝이 뾰족한 모양 수렵구가 빈번하게 쓰였습니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양 지역 간에 기술적인 측면에서 접촉이나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슴베찌르개는 이후의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석창이나 화살촉 등의 유물에 영향을 줍니다. 슴베찌르개는 주먹도끼, 찍개 등과 같은 대형석기와는 달리 동물을 먼 거리에서 사냥할 수 있는 획기적인 도구입니다. 이렇게 원거리에서 던질 수 있는 사냥도구는 인류의 생존확률을 더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루의 이용’ 은 다른 재료를 결합하여 도구를 만든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도 발전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슴베찌르개 만들기에 적용된 돌날 만들기 기술, 석기와 자루 결합방식, 창을 이용한 수렵방식, 도구의 경량화를 통한 이동의 효율성 등은 인류의 생활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와 같은 수렵구의 발달은 인류가 빙하기라는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김동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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