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에 죽은 독일인 건축가를 십여 년 전에 만났다고 하면 의아한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시라카와마을은 기후현 산골짜기에 얼마 안남은 옛 전통방식의 일본집으로 지붕 모습이 사람 손의 합장(合掌) 모습이라 하여 합장가옥 곧 일본말로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고 부른다. 눈이 많은 지방의 가옥형태다. 이 마을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이 독일인 건축가 브루노다.
브르노가 이곳을 찾은 것은 1933년 일이다. 당시 그는 독일의 촉망받는 건축가였다. 브르노는 1880년 독일 케니히스브루크에서 태어나 33살 때 '철의 기념탑', '유리의 집'을 발표하여 국제적인 평가를 얻은 바 있다. 그 뒤 그는 베를린 주택공사의 공동주택 설계를 맡게 되는 데 건물과 건물 간격을 띄우고 나무를 심는 등 요즘말로 친환경적인 공동주택 설계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은 히틀러가 총리가 되어 무너진 경제를 되살리는 것은 물론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잃어버린 조국 땅을 되찾고, 유럽을 포함한 러시아까지 무력으로 합병하는 것 등을 목표로 독일을 폭풍처럼 몰고 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수용시설을 많이 지어야했는데 인간 이하의 공동시설에서 신음하는 것을 보고 당시로는 과감한 공동주택 설계를 한 것이다.
그러나 브르노는 이내 히틀러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고, 결국 1933년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 이전 브르노는 일본건축학회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일본행을 택한 것 같다.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교수를 역임했기에 일본에서 교수자리를 주고 싶었지만 나치의 눈치 때문에 공식적인 자리를 줄 수 없었다. 그래서 브르노는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의 작은 암자인 달마사 세심정(達磨寺 洗心亭)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브르노는 일본문화에 관련된 글쓰기에 몰두한다. 이곳에서 지내는 3년 동안 브르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는데 이것이 <일본 타우트의 일기>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본미의 재발견> 등의 글을 속속 남겼다. 일본생활 3년 뒤 그는 터키로 건너가 2년뒤 이스탄불에서 숨을 거둔다.
내가 브르노의 설명을 길게 한 것은 며칠 전(12월 31일) 군마현 다카사키에서 <브르노가 사랑한 일본의 민예>전(展)을 봤기 때문이다. 브르노는 당시 두메산골인 다카사키의 작은 암자에 살면서 마을사람들이 만든 망태기나 삼태기 따위의 소소한 생활용품에 매료되어 갔다. 이러한 물건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는 끊임없는 글을 써서 일본인들이 잊고 지내던 "일본 미의 아름다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JR다카사키역(高崎驛)에서 새해맞이 특집으로 열리고 있는 군마현 토산품 전시회를 돌아보면서 나 역시 독일인 건축가 브르노에 대한 인연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