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고도성장기 개발의 물결에 휩싸였고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서는 대규모 택지 개발로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생활 도구 등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 보존의 필요성을 느껴 고려향민속자료관(高麗鄕民俗資料館)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히다카시 교육장-
고려천[고마가와, 高麗川]가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히다카시의 ‘고려향민속자료관(高麗鄕民俗資料館)’은 아담한 2층 전시실을 갖춘 향토 자료관이다. 자료관 입구에는 다양한 모양의 떡살이 전시되어 있으며 안쪽 1층 전시실에는 물레 등 의생활에 관련된 도구를 비롯하여 벼농사에 필요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벼를 훑는 홀태나 탈곡기 등은 과거 우리 농촌에 있던 것들과 흡사하여 전시관을 찾는 한국인들의 시선을 끈다.
2층 전시실에는 주로 고기잡이 도구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농사의 경우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뤄진 때여서 일본의 농촌이나 한국의 농촌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고려향민속자료관(高麗鄕民俗資料館)”이라는 이름 속에 고마(高麗)라는 말이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료관이 들어선 이 일대를 비롯하여 가까이에 있는 고마신사(高麗神社)에 이르기 까지 1,300년 전 고구려인의 향기를 물씬 풍기게 하는 고마(高麗) 지역은 일본의 역사책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서기 716년(靈龜2년) 고구려인 1,799명을 무사시국(관동)에 이주 시키고 이곳에 고구려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으로 그 역사가 입증되는 곳이다.
“고려향민속자료관” 2층에서 밖을 내다보니 “고려군 건군(建郡) 1300년”이라고 쓴 펼침막이 나부낀다. 초대 고구려군 군수였던 고구려왕 약광(若光, 잣코)의 사당인 고마신사(高麗神社)를 비롯하여 고구려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사이타마현 고마향((高麗鄕)은 한국인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 일본한자 지원이 안 돼 구자체로 표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