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조선 왕실의 기록물 중에는 발기[件記:ㅂㆍㄹ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기록물은 주로 왕실 의례에 소용되는 물품, 인명 등을 일일이 나열하여 작성한 목록으로, 각 건(件)들에 대한 기록[記]이라 하여 한자로는 ‘件記’라고 했고 ‘件’은 우리 옛말로 ‘ㅂㆍㄹ’로 불러 ‘ㅂㆍㄹ기’라고도 하였습니다. 발기는 비록 낱장에 불과하지만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 왕실 의례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도 몇 몇 종의 발기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 소개할 발기는 왕자의 혼례식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이 기록물은 가로로 긴 두툼한 종이를 아코디언 식으로 접어 직사각형 형태로 만든 첩으로, 표지는 겉면에 일부 남아 있는 붉은 색 직물로 보아 붉은 비단을 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발기를 펼치면 종이 위에 정성껏 붉은 선을 긋고, 정서로 한 줄 한 줄 쓴 글이 확인됩니다. 이를 편의상 가로로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기록물 속에 보이는 ‘친영(親迎)’, ‘동뢰연(同牢宴)’, ‘조현례(朝見禮)’는 혼례 절차이며, ‘왕자(王子)’라는 명칭으로 보아 왕자의 가례 때 작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차비(差備)’는 특별한 일을 위해서 임시로 임명한 사람입니다. 즉, 가례에서 다양한 임무를 담당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차비들은 왕자차비, 부인차비와 같이 왕자, 부인 등 인물들의 잡일을 담당하기도 했고, 술잔을 준비한 근배차비, 대추와 밤이 담긴 소반을 준비하는 조율반차비와 같이 소소한 물품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각 차비 아래에는 일(一), 이(二), 삼(三)과 같이 숫자가, 그리고 그 아래에는 숫자에 따른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름들은 화향(花香), 금향(錦香), 계월(桂月)과 같이 모두 성은 없이 이름만 두 글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단서들을 종합해 볼 때, 이 기록물은 어떤 왕자의 가례 행사 때 다양한 일을 담당한 차비들의 명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물은 언제 작성된 것일까요?
조선시대에 왕세자, 왕자, 공주, 옹주 등 왕실의 주요한 인물이 혼인을 하면 그 준비와 진행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후일에 참고하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왕세자는 등록과 의궤, 왕자는 등록을 남겼는데, 현존하는 등록들을 찬찬히 찾아보면 이 기록물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왕자 가례 등록들을 살펴본 결과, 이 기록물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화군(義和君)의 1893년 혼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의화군 혼례에 대한 기록인 《의화군가례등록(義和君嘉禮謄錄)》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있습니다.
가례청에서 문서를 내리길,
“이번 가례 때 여러 의식을 사전 연습하기 위해서 예모관(禮貌官)과 능숙한 서원을 이번 달 21일을 시작으로 기기국(機器局)에 대령하며, 각 차비여령(女伶)은 안부(案付: 관청에서 제작한 문서)에 있는 숫자대로 선명하게 복색을 갖추고 각 관아의 담당 서리가 이번 달 21일 날 밝기 전에 여령을 거느려 기기국에 대령하라.”
廳甘結,
今此嘉禮時, 各樣習儀次, 禮貌官與事知書員, 自今二十一日爲之始日, 待令于機器局爲㫆. 各差備女伶, 一依案付數, 以鮮明服色, 各其司掌吏, 今二十一日未明時, 豫率待令于機器局爲㫆.
그리고 이어서 당시 혼례의 친영, 동뢰연, 조현례 때 동원된 차비여령의 목록이 붙어 있습니다. 등록에는 기록물에서 살펴본 각 의례와 차비들이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곧 이 발기는 의화군 혼례 때 소소한 일들을 담당한 차비여령의 목록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목록은 실무 상 작성과 수정을 거치면서 여러 번 작성됩니다. 이 발기는 직물로 표지를 갖추고, 정성스레 붉은 선을 그어 목록을 정서한 것으로 보아 마지막 목록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행사를 위해서 여령(女伶)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여령은 연향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기녀를 일컫기도 하지만 중요한 행사 때 소소한 일을 담당한 관비를 일컫기도 합니다. 이들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목록이 작성되고, 또 수정되면서 마지막 목록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은 행사준비 과정에서 관원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 작은 기록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소중이 보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상백(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