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을 잊을까 함이려니
춤곡조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한용운의 ‘거문고를 탈 때’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거문고”는 ‘백악지장(白樂之丈)’ 곧 모든 음악의 우두머리라고 일컬어진다. 1610년(광해군 2년) 양덕수(梁德壽)라는 사람이 펴낸 거문고 악보 《양금신보(梁琴新譜)》에는 “거문고는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이므로 군자가 마땅히 거느려서 바른길로 나가게 하는 것(琴者樂之統也故君子所當御也).”이라고 되어 있다.
그 거문고는 오랫동안 정악만으로 연주되다가 1896년(고종 33) 당시 20살이었던 백낙준(白樂俊)이 처음 산조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후 거문고 산조는 신쾌동(申快童, 본명 신복동, 1910-1977) 명인에 의한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한갑득(韓甲得, 1919-1987) 명인에 의한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두 유파로 발전해왔다.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보유자 김영재 명인에 의해 이어지고 있으며, 한갑득류 거문고산조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보유자 이재화 명인에 의해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시대 백결선생 고 한갑득 명인의 탄신 100돌 기념연주회가 어제 5월 23일 밤 8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한갑득거문고산조보존회・이재화거문고연구회 주최, 문화체육관광부・서울특별시・서울문화재단 후원으로 열렸다.

김영운 한양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시작된 공연은 먼저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보유자 이재화 명인의 ‘화현금’ 연주다. 거문고는 원래 6현이지만 이재화 명인이 저음역과 청변화의 활성화를 위하여 9현으로 개량한 거문고다. 기본은 지키면서도 저음역이 보강되어 음폭이 넓어지고 음량도 커짐으로서 현대에 맞는 효과적인 소리로의 재탄생이라고 할까? 처음 듣는 화현금의 소리는 역시 이재화 명인의 진가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이어서 이재화 명인의 예비전수생 강민영 외 18인의 화려하고 웅장한 산조합주가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그들의 풋풋한 소리가 하나 되어 거문고 산조의 미래를 밝게 해주고 있다.
이제 무대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 안숙선 명창이 깜짝 등장했다. 그는 조용복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수궁풍류를 소리한다. 왜 안숙선 명인이 스타 국악인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관객들이 그의 소리에 한껏 몰입한다.



계속해서 전수생 김선효 외 10인의 산조합주 차례다. 이번 둘째바탕 산조합주는 합주는 물론 독주와 부분 편곡으로 연주자 개개인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전수생들을 길러낸 이재화 명인의 공력이 드러나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재화 명인이 나서서 한갑득 명인으로부터 전수 받은 산조의 전형적 연주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공통가락을 최소화하여 가락을 구성하였다는 연주는 청중이 거문고 산조의 매력에 푹 빠져들도록 만든다.
거문고는 소리는 꿋꿋하고 감정에 솔직하다는 평을 듣는다. 다른 현악기 연주는 보통 터치기에 울림과 여운이 있고 길게 뽑아낼 수도 있지만 거문고는 술대로 내려치고 나면 뒤집을 수 없고 꾸밀 수도 없다는 게 거문고의 큰 매력이다. 오늘 공연에서 이재화 명인과 연주자들은 그런 거문고의 특징을 잘 소화하고 있다. 연주를 듣는 동안 조선시대 선비들이 거문고를 사사로운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악기 이상의 악기’로 받아들인 까닭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이재화 명인에게 이날 공연의 의미를 물었다.
"저는 오늘 공연을 그저 때우기식으로 하기는 싫었습니다. 전체 공연을 세 바탕으로 나누어 각각 연주방식을 달리하여 연주하도록 하여 청중들이 연주자 개개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지루한 틈을 느낄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저는 이 시대 청중들에게 화현금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존 거문고에 개방현 3개, 괘 2개를 더하여 청변화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예술성은 더욱 높이고 연주 기량에 맞는 표현법의 다변화를 꾀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화현금으로 거문고의 미래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역시 스승의 것을 그저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경지를 보여주는 명인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서울 신정동에서 온 청중 정한영(37, 교사) 씨는 “거문고를 그저 국악기의 하나로만 생각해왔는데 오늘 공연을 보고 ‘거문고는 흔히 듣던 그런 음악의 범주는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음악을 들으면서 내면의 흥이 일어나는 경험을 많이 했지만 거문고 음악에서는 오히려 내 감정을 평정시켜 단아한 순간이 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왜 선비의 악기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라고 말했다.
옛 사람들은 소리가 계속 울릴 때보다는 소리가 그쳤을 때 그 소리의 빈자리를 채워주려는 데서 마음이 자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문고가 백악지장이 되지 않았을까? 거문고로 마음속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봄밤은 그렇게 무르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