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일식이 일어나면 하늘의 경고라고 생각하여 구식례(救食禮)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일식 시간을 1시각이나 늦게 맞춘 일월식술자(예보관)가 매를 맞는 것을 본
세종임금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자명종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중국의 기준에 맞추어 계산했으니 제대로 맞을 턱이 없었지요.
사실 일식, 월식은 천재지변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일식을 한자로 쓰면 ‘日蝕’과 ‘日食’
두 가지로 앞에 것은 해를 좀먹는다는 뜻, 뒤에 것은 해를 먹는다는 뜻으로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구식례는 임금이 일식과의 전쟁을 한다고 생각하여 각 관청에서는
관리들이 소복을 입은 채 일식 때는 북을 치고, 월식 때는 징을 쳐 임금이 이기기를
응원했습니다. 소복을 입은 것은 나라에 불길한 기운을 불러온 죄인이라 생각한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