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4년 10월 6일조에 있는 글입니다.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예배(禮拜)한
뒤에, 조상의 혼백을 모신 묘당(廟堂)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이천우에게
명하여 밥상 위에 동전을 던지게 하니, 새로 정한 서울은 2길(吉) 1흉(凶)이었고,
송경(松京)과 무악(毋岳)은 모두 2흉(凶) 1길(吉)이었다. 이에 임금이 한양으로 서울을
천도하기를 결정하고, 땅의 생김새를 보고 길흉을 판단하여 향교동(鄕校洞) 동쪽 가에
이궁(離宮, 태자궁)을 짓도록 명하고 ㆍㆍㆍ”
나라의 중대사인 도읍지를 결정하는데 왜 태종은 동전을 던지는 ‘척전(擲錢)’이라는
방법을 썼을까요? 아마도 이는 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밀어붙이기
보다는 명분과 정당성을 내세우려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종묘에 모신 영령의 뜻이
한양에 있다며 한양으로의 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