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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도선국사의 고향, 광양 성불사의 가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가을도 저물어가는 11월 하순이다. 이제 남쪽에만 남은 단풍잎이 조금 남아서 마지막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산천에는 어디에도 절이 없는 곳이 없지만, 역사의 숨결을 간직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잘 어울려진 절을 찾기는 그리 쉽지많도 않다.

 

한국의 산하에는 오래되고 유서깊고 장대한 절들이 전국 방방곡곡 많고도 많았지만 전국토를 휩쓸고간 전쟁의 상처로 대부분 절들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뜻있는 스님들이 나타나 다시 복원불사를 진행하여 그나마 오늘날 볼 만한 절들이 들어섰다. 광양의 성불사 또한 그런 역사의 상처를 이겨내고 오늘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성불사는 이름 그대로 「부처를 이루는 절」이라는 뜻으로 이 절의 부처님은 석가모니의 제자였던 미륵을 모시고 있다. 불교의 창시자는 석가모니인데 그는 인도에서 왕자로 태어나 세상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왕위였지만, 그는 그 예정된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하여 부처가 된 사람이다. 그런데 미륵은 석가모니의 제자였으나 세상의 인연이 짧아 석가모니 보다 먼저 타계하였는데, 그가 미래 이 세상에 올 것이라는 석가모니의 수기예언에 따라 불교에서는 미륵을 이 세상에 다시올 부처로 믿는 미래불을 모시고 있다.

 

성불사는 광양 백운산 도솔봉 아래 성불사 계곡을 끼고 남향으로 자리 잡은 절로, 아늑한 백운산자락과 계곡이 잘 어울린 이 지역 가장 큰 절이다. 성불사는 본래는 광양지역에서 태어나 신라말 풍수지리 사상을 통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이땅이 바로 불국토임을 주장하며 내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이를 위하여 전국의 명당터에 절을 많이 지었던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지금 성불사에는 도선국사의 옛 자취는 남아있지 않다.  그 자취는 모두 전란을 거치면서 사라지고만 것이다.

 

이처럼, 도선국사의 명성은 전하고 있던 이곳에 1960년부터 현재의 주지스님이 일생을 다 바쳐서 광양지역의 신도들의 모금으로 오늘의 모습을 이룩하였다. 노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불사를 이룩 하기 위하여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스님의 원력의 결실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성불사의 전각들은 요즈음 많이 사용하는 콘크리트를 가능한 사용하지 않으려 무척이나 노력하였다. 비록 수백년 오래된 전각은 없어도, 가능한 도선국사의 향기만은 느낄 수 있게 하고자, 전각 하나에서 석물 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석물들의 형상도 근래 보이는 변형되거나 왜색이 보이는 형태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스님의 안목과 정성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도선국사는 한국풍수지리학의 대가로, 중국에서 유행하던 자연산천에서 명당터를 찾는 기법을 체계화한 풍수학을 한국의 산천에 적용하였고, 한국의 풍수학으로 정립하였다. 도선은 이곳 광양땅에서 태어나 불교에 입문하였으며, 신라말 혼란기에 새로운 나라를 세울 위인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가 바로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었다고 한다. 이런 예언으로 고려 태조왕건은 자신이 임금이 되기전에 살았던 고승인 도선국사를 지극히 존경하였다. 그는 도선국사가 비기에 정해준 명당터에 절을 짓고, 그 이외의 땅에는 절을 짓지 못하게도 하였다. 절터가 아닌 곳에 절을 지으면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화가 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도선국사는 신라말 전국을 답사하며 깊은 산속에 있는 명당을 찾아 절터를 잡았다. 그런 뒤 도선은 37살에 고향인 광양으로 돌아와 옥룡사를 짓고 살았는데,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다가 72살에 옥룡사에서 입적하였다. 옥룡사터는 이곳 성불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 옥룡사터는 도선국사의 가장 중요한 유적지이나, 발굴뒤 나온 전각의 주춧돌만 있는 빈터로 남아있다. 도선국사는 신라 말 전국토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답사한 곳들에 대한 평가를 시를 읇듯 《답산가》로 지었다. 그가 지은 책으로는 산문으로 지은 《도선비기》, 《송악명당기》, 《삼각산명당기》, 시문형식으로 지은  《도선답산가, 등이 전하고 있다.

 

광양 성불사는 남쪽지방 다도해가 가까운 백운산 자락의 절로 이곳 광양에서는 옛날 전통 한국절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 자연에 깃든 아름다운 절을 찾는 불자라면 한번은 꼭 찾아볼 만한 절이다. 지금의 성불사와 더불어 성불사를 처음 지었던 도선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근처 〈옥룡사터〉와 〈도선국사마을〉도 함께 찾아보면 보다 뜻깊은 답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선국사마을은 옛날 마을은 아니지만, 도선국사가 태어난 마을로, 맛좋은 옹달샘이 솟아나고 있어, 주변의 사람들이 약수를 받기 위하여 찾는 곳이며, 도선국사마을에는 직접 만든 손두부와 칼국수를 맛볼 수 있는 정겨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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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