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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아침의 추억

[정운복의 아침시평 72]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밤새 눈 내린 아침

 

한겨울 문풍지 사이로 청아한 참새 소리와

정감 어리게 다가오는 싸리비질 소리에 눈을 뜨면

밤새 내린 눈에 설국으로 변한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이 설레곤 했습니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면서 최소한의 교통로를 만들어야 했는데

마당 끝 화장실, 뒤란의 장독대, 물 긷던 개울가까지 길을 내고 나면

이웃집까지 길을 내야만 합니다.

벙어리장갑에 하얀 벙거지를 쓰고 머리에 김이 나도록 눈을 치우며

빗자루와 넉가래를 들고 이웃과 마주한 아침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을 청년들은 토끼몰이한다고 설피에 옹노(올가미)를 만들어 산으로 향하고

외출이 제한당한 겨울 한낮에 아궁이에서 익어가는 고구마의 누릇함이

사랑방의 구수한 이야기처럼 한 겨울을 녹여주었습니다.

 

널지 않은 마당에 눈을 굴려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눈사람이 식구를 늘리는 재미를 주었고

처마 밑에 길게 매달린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했던 그 시절엔

그리 넉넉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무를 땔감으로 이용하던 시절이라 자가용은 꿈도 꾸지 못했고

오로지 대중교통이 아니면 걸어서 이동해야 했으니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걱정보다도 즐거움이 더 컸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갔던 길이지만

눈이 내리고 나면 아무도 걷지 않은 길로 다시 설치됩니다.

그 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려니와

나의 걸음이 발자국의 흔적으로 남아 겨울을 지킨다고 생각하면

조심스러운 마음이 됩니다.

 

지구의 온난화가 연일 뜨거운 논쟁이 되어도 눈은 내립니다.

눈은 모든 대지의 색을 하얗게 동질화시키는 매력이 있습니다.

눈 내린 아침, 저도 눈처럼 하얗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