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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진 애기지게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3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의 아버지, 곧 내 할아버지는 노름꾼이었다. 아니 노름꾼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허접한, 노름판에 호구였던 것이 분명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와집과 전답, 그리고 할머니가 시집오실 때 친정에서 주신 천 평도 넘는 콩밭도 모두 노름판에서 잃으시고는, 갓 아홉 살 된 맏아들을 소학교에서 기어이 끌어내어 애기지게를 만들어 주며 산으로 몰아 올리셨다고 한다.

 

“나라도 없는데, 공부는 해서 머하노... 집안에 일손이라도 보태라..”

가장인 당신도 책임지지 않던 집안 건사를, 고작 아홉 살이던 내 아버지에게 일임하셨던 양반이 내 할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여러 가지 노환으로 병원 생활을 시작하신 여든 중반 무렵, 새벽에 잠을 못 이루시며 깨어나셔서 한숨만 후우~ 하고 쉬시기에 왜 잠을 못 주무시냐고 내가 물었더니, 침상 옆을 지키던 나에게 어릴 적부터 가슴속에 담아오시던 할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들을 수 있었다.

 

“세상에... 그 애기지게를... 내가 아홉 살 때 영감이 직접 만들어 주는기라...

그거를 나한테 지우고는 산으로 들여보냈는데, 내가 얼매나 무서웠겠노?

해는 떨어지고, 산짐승들은 울어대고... 애비가 자식한테 우예 그리 모졌는지 모린다.”

 

 

그 날...

내 아버지는...

학교에서 당신의 아비 손에 끌려 나오시며 그렇게나 울고 또 울었다고 하셨다. 공부하는데 남다른 재미를 느끼셨다는 내 아버지... 자식들 안 굶기려고 장사 나간 할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계셨는데, 집에 땔 나무가 없다며 할아버지는 당신의 어린 아들에게 애기지게 지워서 산으로 내몰았다고 하셨다. 눈이 하얗게 쌓여 길도 못 찾을 그 험한 겨울 산으로...

 

그래서일까?

내 아버지는 그렇게도 나에게 바라신 것 하나. 나중에 커서 공부 많이 하는 학자가 되라고 타이르고 타이르셨다. “너는 돈 버는 일보다도 학자가 되면 좋겠다. 세상에는 공부를 많이 해야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는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렇게 아비의 손에 이끌려 나오신 소학교 교실 어느 구석에 남기고 온 못 이룬 꿈, 그 꿈 안에 아들을 넣어두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수없이 들은 이야기는....

절대 학교는 결석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심지어는 홍수가 나서 다리가 다 떠내려가더라도 말이다.

 

언젠가는 금호강이라는 대구에서 제법 큰 강 하나를 건너야지만 학교에 가는 동내에 살았던 적에 있었다. 큰비가 오는 날이면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우리 동네와 학교가 있는 시내를 이어주는, 일명 잠수교라 부르던 낮은 다리가 강물에 잠기는 적이 허다했다. 그래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그 장대비를 맞으며 몇 킬로미터의 산기슭을 돌고 돌아서 큰 다리가 놓여있는 동네까지 그 먼 길을 돌아서도 학교에 가야만 했다.

 

순전히 아버지의 간절한 당부 때문이었는데, 내게는 참으로 큰 부담이었다. 지각은 할 수 있지만, 결석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 내 아버지의 투철한 지론이셨다. 아마도 당신이 그리도 다니고 싶으셨던 학교에 대한 간절함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애기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서 그 작은 아이가 무슨 큰 나무를 해 올 수 있었을까? 낫 하나 손에 쥐고 산비탈 이곳저곳에 떨어진 갈비(땅에 떨어져 있는 잔가지)나, 어린아이가 낫으로 자를 수 있는 자잘한 잡목들이 다였을 터이지만, 내 할아버지는 아홉 살 난 아들이 지게 가득 나무를 해 오지 않으시면 무척 화를 내셨다고 한다.

 

게다가 그 당시 모든 사람이 나무를 해다가 불을 피우던 시기이니, 동리 가까운 야산에는 거의 민둥산이라, 몇 시간을 올라가야지만 그나마 땔만한 나무라도 주어 올 수 있었다. 감자 두 알 허리에 차고, 그 먼 산을 지게 지고 올라갔던 내 아버지의 험난한 인생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한 번은 큰바람이 지나고 난 뒤, 올라간 산에 정말 많은 잔가지가 떨어져 있었다고 하셨다. 그날은 저 갈비를 다 끌어서 가야겠다는 욕심이 드셨는지 어린아이가 도저히 지고 갈 수 없을 만큼의 나무를 지게에 올리셨나보다. 그 무게에 못 이겨 산비탈을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서 내려오셨다고 한다. 묶어놓은 갈비들이 풀어지면 다시 묶어 올리고, 또 풀어지면 다시 묶기를 몇 번, 올라가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나며 내려오신 아버지의 온몸은 상체기로 엉망이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다음날 그 나무를 내다 팔아 다시 노름판에서 다 잃어버리셨단다.

 

아버지는 그날의 일이 분하고 서러워서 도저히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