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머리털 그리고 피부 모두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효의 시초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사내들이 귀를 뚫고 귀걸이를 달아 중국
사람에게 비웃음을 사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후로는 오랑캐의 풍속을 일체 고치도록
안과 밖에 타일러라. 서울은 이달을 기한으로 하되 혹 따르지 않는 자는 헌부가
엄하게 벌을 주어라.” 선조실록 6권, 5년(1572년) 9월 28일자의 기록입니다.
젊은 사내들이 귀걸이 하는 풍조가 얼마나 심했으면 어명으로 금하도록 했을까요?
이것이 사내들의 대표적인 유행이었다면 아녀자들은 조선 초 저고리가 엉덩이를 덮을
만큼 길었다가 조선 말기로 가면서 극도로 작고 짧으면서 치마는 풍성한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또 소매가 너무 좁아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지고, 길이가 너무 짧아
가슴을 가리기조차 힘든 것은 물론 혼자는 입을 수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