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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으로 함께 하는 우리

좋아하면 판단할 필요가 없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107]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린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할 때

이런저런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애씁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런 이유로 싫어한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그것이지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당신이 싫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말에 반대한다."라는

감정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선택은 감정이 좌우하는 것이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는 감정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끌림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논리에 앞서 감성을 자극해야 합니다.

좋아하면 판단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조지가 이런 실험을 합니다.

"나는 약간의 반란은 좋은 것이며

자연계에서의 폭풍처럼 정치계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말을 두 그룹에 들려주고

첫 번째 그룹에는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한 말이라고 소개하고

두 번째 그룹에는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가인 레닌이 한 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놀랍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거의 모든 학생이 그 말에 동의를 표했지만

두 번째 그룹은 거의 모든 학생이 그 말에 반대를 표한 것이지요.

같은 말을 들려주었는데도 그 평가가 상반되게 나온 것은

말하는 사람마다 끌림의 차이가 있고, 그것이 다르게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우린 사람들을 대할 때 유사성을 찾고 싶어 합니다.

공통분모가 있으면 대화하기가 편하기 때문이지요.

첫 만남이라면 고향이나 아는 사람을 매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당신과 비슷한 사람입니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문제를 만드는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반응에 차이가 있습니다.

"서해안 왜목마을의 석양이 참으로 아름답네요."

이 표현에

문제를 만드는 사람은

"당신은 아직 코타키나발루의 불타는 석양을 보지 못했군요."라고 이야기하지만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 아름답네요."라고 대답합니다.

 

곧 어울리기 싫으면 차이점을 먼저 찾지만,

동화되고 싶으면 유사성을 먼저 찾는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유한한 일생을 살아가는 것은 같습니다.

이왕 살아가는 것 동질성을 회복하여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끌림으로 함께 하는 우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