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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표기법’은 발음표기 이상이어야 한다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 15]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한글 외국어표기법은 단순한 발음기호가 아닌 복합적인 언어기술 일부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응용 앱이 동시에 개발되어야 합니다. 한어 병음은 하나의 예를 보여 줍니다

 

영어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면?

 

영어의 ‘girl 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발음기호가 미국식으로는 [ ɡɚl], 영국식으로는 [ ɡɜːl ]로 표현됩니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소리를 들어보면 둘 다 ‘거얼’로 들립니다.

 

여기서 생각지도 않았지만 중요한 의문이 생깁니다. 발음기호가 언어의 읽는 소리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왜 애초에 소리가 나는 대로 ‘거얼’이라 안 쓰고 [ ɡɚl]이나 [ ɡɜːl ] 등 낯선 글자를 불러드릴까요?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만이라도 처음부터 ‘거얼’로 배웠다면 이런 서양 발음기호는 건너뛰고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언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중국어를 배울 때도 한국사람이라면 당연히 한글로 발음을 적어 배워야겠지요.

 

여러분은 다른 나라 원어 노래 하나쯤은 아시겠지요? 그 노래 배울 때 아마 가사의 발음기호보다는 한글로 써서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원가수의 노래를 들어보고 발음을 좀 고쳤겠지요. 이제라도 우리가 외국어를 가르칠 때 한글로 발음을 표기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발음기호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위에서 소개된 영어 발음기호는 국제음성기호(IPA, Internatiobal Phoenetic Alphabets)에서 따온 것인데, IPA는 영국과 프랑스의 언어 교사들이 만나 1988년에 만든 것입니다. 처음에는 라틴어 계통의 언어를 대상으로 하였지만 그 뒤 언어를 넓혀가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글자만 105개가 등장하고 이들 글자에 40여 개의 부호(diacritics)를 붙여 발음을 미세하게 구별하여 나타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처럼 무슨 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개개의 발음에 고유의 기호를 지정해 준다는 원칙입니다. 당연히 너무 복잡해져 일반인은 어려워서 쓰지 못합니다. 아래 그림은 IPA의 닿소리(자음)를 보여줍니다.

 

 

위 표 안에서 영어 발음기호에 쓰이는 닿소리는 한글 19개보다 조금 많고 홀소리(모음)는 한글보다 적습니다. 우선 ‘으’ 발음을 표기하는 홀소리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영어 발음기호가 없어도 한글로 발음을 표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한글은 음소(音素)를 나타내는 글자들이라 얼마든지 합성하여 다른 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ㄲ’과 ‘ㅉ’처럼 같은 음소를 반복하면 된소리로 됩니다.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원리로 ㄹㄹ (쌍ㄹ)이나 순경음 ㅍ(ㆄ) 같은 글자를 만들어도 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알파벳이나 IPA는 이렇게 합자하여 쓰지 못합니다. 그러니 한글이 이들보다 영어 발음표기에 훨씬 적합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직 심각하게 생각을 안 해 봤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한글 외국어 표기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중국어 한어병음(漢語拼音)의 사례

 

중국은 이미 말하였듯이 국가정책에 의해 병음(拼音 Pinyin)이라는 발음표기체제를 사용합니다. 병음은 한자의 발음을 표기할 뿐 아니라 한자를 컴퓨터에 입력할 때도 사용되며 사전에서 어휘 배열순서를 정해주기도 합니다. 병음이 없었을 때 한자의 발음은 어떻게 표현하여 배우고 또 사전에서 글자를 어떻게 찾았을까요? 정말 조금만 생각해 봐도 얼마나 답답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졌지만, 한어병음은 1950년대 초 한자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모택동이 당시 총리였던 주은래에게 지시하여 만든 것입니다. 주은래는 미국에서 활약하던 주영광이라는 의사를 불러들여 병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병음 덕에 중국인들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어 중국의 전산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글로 외국어표기법을 만들면 당연히 병음처럼 전산입력을 기본으로 생각하여야 하며 그 이상의 기능을 탑재하여 본래의 문자보다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방법을 언어별로 만들면 이들을 모두 총괄하여 한글 바탕의 종합적 언어 꾸러미(패키지)가 생겨 날 것입니다. 이런 일은 한글이 아니고서는 엄두조차 못 낼 일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우리는 덮어 두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하늘에서 뭐라 하시겠습니까?

 

한글과 라틴 알파벳의 태생적 차이

 

이런 기대는 한글이 거의 완벽한 ‘소리표기 문자’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알파벳은 소리표기 문자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글자 C는 영어에서는 ‘ㅋ’발음(cat), ‘ㅆ’발음(city), ‘ㅊ’발음(Celo) 등으로 쓰이며 프랑스나 스페인어에서는 ‘ㄲ’ 소리가 납니다. 홀소리도 a는 5~6가지 발음을 냅니다. 이렇게 글자의 음가가 일정하지 못하여 소리를 표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알파뱃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단어’를 표기하는 것입니다. 알파벳이 모여 단어가 되면 비로소 소리를 표현합니다. 낱말은 철자의 모임이므로 알파벳은 ‘철자 표기문자’라 하겠습니다.

 

소리표기는 철자표기에 견줘 타고난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좀 틀려도 통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바지’나 ‘아부지’라고 써 놓아도 모두 아버지인 줄 압니다. 발음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귀가 이미 훈련이 되어있는 것이지요.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girl을 ‘거얼’이라고 표기하거나 ‘걸’, 심지어 ‘기알’이라고 해도 알아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gul’이나 ‘geol’이라고 써 놓으면 이해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철자법은 꼭 맞아야만 하며 그러므로 미국 사람들에게는 철자법이 치명적입니다. 철자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 들통나서 유력했던 대통령 후보자가 출마를 포기한 일이 있을 정도입니다.(글상자 참조)

 

결론적으로 언어의 발음은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실제로 영어와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Potato' 철자법 탓으로 대통령 출마 포기

 

1988~1992년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던 댄 퀘일은 젊고 유능한 정치가였지만 무식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맞춤법 교실에서 Potato 끝에 e를 붙이라고 가르쳐줬다가 망신을 당한 일이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것이 정계 은퇴의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었지만,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