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다양한 악기의 모습에서 고구려 귀족의 멋과 사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악기의 그림을 놓고 고구려 벽화가 전기에는 '인간의 향락'을 후기에는 '천당을 갈망'하고 있다는 얘기도 합니다. 더욱이 탄쟁(彈箏)·와공후·비파·적·녹고 등이 서역이나 중앙아시아계통의 악기라는 사실에서 당시의 활발한 동서문물 교류현상을 확인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겨레가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儛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등 예부터 악가무와 함께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악기가 벽화에 등장하는 것은 그 증거의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