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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어머니이자 스승님의 가야금 이해하는 연주회 열려

‘성금연 탄생 100주년 기념연주회’ <지성자의 성금연 15현 음악세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스승님이 걸어오신 발자취는 한평생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가야금을 무릎 위에서 내려놓지 않고 따뜻한 체온을 악기와 함께 느끼면서 가락 하나하나를 마치 한올 한올의 비단을 짜듯 소중한 작품으로 남겨놓으셨습니다. 스승님은 민속음악을 더욱 폭넓게 표현하고자 12현 가야금을 15현으로 개량하여 많은 곡을 남기셨습니다. 예전에 저의 공연이 주로 곡을 외워서 소화해낸 공연이었다면 이번 공연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쪽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이는 성금연 가락보존회 대표 지성자 명인의 말이다. 어제(28일) 저녁 4시부터, 서울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는 ‘성금연 탄생 100주년 기념연주회’ <지성자의 성금연 15현 음악세계> 공연이 5월의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만석의 객석으로 성황리에 막이 올랐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 5월 7일, 전남 담양 출신인 춘사 성금연(春史 成錦鳶1923~1986) 명인은, 어제 공연한 지성자 명인의 가야금 스승이자 어머니다. 성금연 명인은 ‘옛 소리를 지키며 새로운 소리를 재창조한 천재적인 가야금 연주가’라는 찬사와 더불어 첫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1968)로 연주의 명인이자, 산조는 물론이고 무용반주, 민요반주, 창극반주, 시나위 합주에 능했을 뿐이라 경기 무속장단, 무용곡, 민요 등을 더욱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15현 가야금을 개량하였고, 소리의 여운과 미세한 음의 감정 처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철 가야금을 개량하기도 했다.

 

 

사실 기자는 가야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가야금 연주회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가서 감상했지만, 솔직히 ‘가야금 12줄, 거문고 6줄’ 정도의 상식 밖에는 없다. 그러다 보니 12줄(12현) 가야금 소리와 15줄(15현) 가야금 소리를 구별해낼 재간이 없다. 다만, 청아한 모습으로 무대의 조명을 홀로 받으며 가야금줄을 타는 지성자 명인의 손끝에서 퍼져 나오는 가락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사람이 나 혼자였는지는 몰라도 듣고 있자니 어느 순간 ‘귀가 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았다. 이날 지성자 명인은 첫 무대를 <춘몽(春夢)>과 <향수(꽃의 향기)>로 장식했고 이어서 두 번째 무대에서는 <흥(興)>을 윤재영의 북과 함께 연주했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에서는 <새가락별곡>을 15현 가야금 지성자, 김보경 명인이 맡았고, 해금 최태영, 아쟁 조성재, 타악 윤재영, 신승균, 이정민이 함께 협연했다.

 

이날 국립창극단 유은선 예술감독의 해설은 가야금 감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성금연 명인의 최초의 작품인 <춘몽(春夢)>이 연주될 때 나는 단순히 ‘나른한 봄날의 꿈’이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생동감 있게 시작되는 봄날의 정취를 경쾌하면서도 산뜻한 가야금 가락 속에 담아낸 것은 다름 아닌 ‘생명의 잉태’를 뜻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15현 가야금의 잉태요,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지성자 명인의 잉태요, 그 결실로 ‘성금연 탄생 100주년’ 공연하게 된 그 출발 선상의 잉태가 아니었나 싶었다.

 

“지난 1년간 어머니(성금연 명인)가 작곡한 곡들을 하나하나 재음미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가야금 줄을 타며 다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병행하면서 철저히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셨던 어머니의 위대한 삶이 눈에 밟혔습니다.” 한 곡의 연주를 마치고 해설자인 유은선 감독이 ‘성금연 탄생 100주년의 의미’를 살짝 물었을 때 지성자 명인을 이렇게 답했다.

 

아! 그랬구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천사와 같은 아기를 잉태한 어머니의 심정이 춘몽(春夢)에 나타난 것 같아 튕기듯 발랄한 가야금 소리가 비로소 귀를 통해 가슴으로 전달되었다. 이 땅의 어머니 된 여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벅참, 설레임, 기대감, 경쾌함 등이 담겨 있는 듯하여 무장단으로 시작하여 자진모리, 중중모리, 동살풀이, 세마치로 이어지는 동안 황홀했다.

 

 

두 번째 곡은 향수(꽃의 향기)였다. 1악장은 환상 속 이야기를 무장단에서 중모리장단으로 이끌며 메나리조의 애틋한 선율을 바탕으로 추억을 끌어낸다. 2악장은 풍물굿에서 사용하는 칠재장단으로 시작되는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잘 그리고 있다. 성금연 명인은 이 부분을 연주할 때 ‘마음속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지는 것 같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마음속의 눈물’은 자신의 딸이자 제자인 팔순을 앞둔 지성자 명인에게 이어졌다. 곡을 작곡한 사람도 가야금을 타는 사람도 그 소리를 듣는 사람도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이었다.

 

세 번째 곡은 <흥(興)>으로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모성애를 표현하고자 한 곡이다. <춘몽(春夢)>이 잉태의 기쁨이라면 <흥(興)>은 성장의 기쁨일 것이다. 순서로 본다면 문외한이지만 <춘몽(春夢)>에 이어 <흥(興)>으로 연결되는 것이 좋지 않았나 싶다. 가야금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이런 소견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흥(興)>은 2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악장은 자진모리장단으로 시작하여 굳건하고 꿋꿋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2악장은 휘모리장단으로 시작하여 흥겨운 리듬과 함께 가야금의 선율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지성자 명인의 연주에 윤재영이 북을 맡았다.

 

마지막 곡은 <새가락별곡>으로 출연자가 많았다. 가야금에 지성자, 김보경 명인, 해금에 최태영, 아쟁에 조성재, 타악에 윤재영, 신승균, 이정민이 맡아 무대를 꽉 채운 느낌이다. <새가락별곡>은 성금연 명인이 바리공주설화를 듣고 그 감흥을 표현한 곡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부군인 지영희(1909~1979) 명인이 각 지역에 다니며 채집, 채보한 경기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부인인 성금연 명인이 가야금 곡으로 만든 첫 작품이란 점이다.

 

 

가야금 가락은 진도지방의 무가(巫歌)에 바탕을 두고 있고, 장단은 경기지방의 리듬으로 이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사실 이 곡이 발표되었던 1960년대 중반 당시에는 푸살-터벌림-봉등채-올림채 장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지영희 명인이 세상을 뜬 이후 ‘도살풀이(지영희 작곡)’를 가야금 가락으로 만들어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에 도살풀이 장단에서 지영희의 해금 가락(최태영 연주)과 성금연의 가야금 가락(지성자, 김보경 연주)이 처음으로 어우러져 관객들로부터 큰 손뼉을 받았다.

 

최초의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이자 천재적인 가야금 연주가 성금연의 제자이자 따님인 지성자 명인은 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보유자, 성금연가락보존회 대표, 지영희기념사업회 부회장으로 활약 중이며, 이번 무대에 함께 선 그의 따님인 김보경 명인 역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이수자로 외할머니 성금연 명인을 뒤를 잇고 있다.

 

친구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손예자 씨(종로 평창동, 63세)는 “평소 존경해오던 성금연 선생의 따님인 지성자 명인의 가야금 연주를 직접 듣고 싶어 공연 일자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1978년 도쿄에서 <지성자 가야금연구소>를 설립할 때부터 지성자 명인을 알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따라 가야금에 흥미를 갖고 있는 일본인 친구도 이번 공연에 함께했습니다. 정말 뜻깊은 공연이었습니다.”라고 공연 소감을 말했다.

 

“오랜만에 지성자 선생의 공연에 와서 가야금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리(音)에도 한국적인 음색(音色)이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던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이었습니다. ” 이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에서 15년 동안 후학을 양성해온 도미이 마사노리(富井 正憲) 교수의 공연 소감이다.

 

봄이 끝자락인 어제(28일), 신록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성금연 탄생 100주년 기념연주회’ <지성자의 성금연 15현 음악세계>를 느끼고자 공연장을 찾은 많은 사람은 가야금으로 맺어진 모녀(母女)의 ‘가야금 사랑’에 아낌없는 손뼉을 쳤다. 나도 그 관객에 묻혀 객석의 불이 꺼지도록 손뼉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