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이 된 “조선왕조실록”은 궤짝에 담아 보관해왔습니다. 그리고 실록이 서로 닿는 것을 막도록 사이에 초주지를 끼워 넣고 악귀를 쫓는 붉은 보자기로 쌌지요. 또 그 보자기에는 벌레와 습기를 막으려는 청궁, 창포 등의 한약재 가루를 담았습니다. 한 궤짝에는 15~20책을 담아 철저하게 봉인하고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이렇게 자물쇠를 채운 왕조실록은 처음엔 서울의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사고에 보관했지만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를 뺀 나머지 사고가 모두 불타자 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 등의 산속 사고에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실록은 임금도 볼 수 없었으며, 실록을 관리하는 사람조차도 함부로 열지 못하게 했지요. 오직 임금 명을 받은 사관만 궤짝을 열게 했고. 그 사관은 임금의 명을 받아 사고에 가는 것을 커다란 명예로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