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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악귀에게도 음악과 춤으로 대접한 우리 겨레

2023 국립국악원 송년공연, <나례(儺禮), 훠어이 물렀거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너도 먹고 물러나라. 너도 먹고 물러나라”

소리꾼과 연희패가 연신 외쳐댄다. 악귀를 쫓아내는 ‘나례(儺禮)’ 의식이다. 어제 12월 27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2023 국립국악원 송년공연 <나례(儺禮), 훠어이 물렀거라>가 열렸다. 무대에 오른 사람만 해도 국립국악원 정악단, 무용단, 민속악단 등 200여 명이나 되는 거대한 공연이다.

 

나례는 궁중과 관아, 민간에서 행해 온 섣달 그믐밤 사악한 악귀를 물리치고, 태평스러운 새해를 기원하는 종교의식이 예술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나라 첫 문헌 기록은 약 천 년 전의 《고려사》에 있으나 처용무를 생각하면 신라 때부터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잡귀와 역병을 쫓아내는 엄숙한 구나의식으로부터 가무와 오락이 주를 이루는 활기찬 잡희로 점차 변화, 발전해 왔다. 그래서 나례를 나의(儺儀), 나희(儺戱)라고도 한다.

 

공연은 고천지(告天地) 곧 ‘나래의 시작을 천지에 고하다’로 시작된다. 섣달 그믐밤 창덕궁에 어둠이 내리고 전각마다 촛불이, 궐문마다 횃불이 켜짐을 샤막(망사천을 써서 뒤가 살짝 비치게 하는 막)으로 보여준다. 인정전 뒤 높은 언덕에서 취타대가 나팔을 불고 북을 두드려 나래의 시작을 하늘에 고한다. 궁궐 네 귀퉁이에서 연종포를 쏘면 각 방위의 자신들이 깨어난다. 사방신이 인정전 마당에 들어와 나례를 허락하는 사방신무(四方神舞)를 춘다. 시작부터가 웅장한 공연을 예고한다.

 

 

이어서 <세역신(說疫神)을 달래다>로 나라의 요청을 받은 민간인 재담꾼이 연희패를 이끌고 잡귀와 역신을 물리치러 궁궐에 들어온다. 두 재담꾼은 역신을 물리치는 방법으로 싸워서 물리치기 전에 먼저 잘 달래고 대접해서 보내자며 그 방법으로 음악을 들려주고 춤을 보여준다. 그 첫 번째로 익살스럽게 봉산 사자춤을 추고 서도소리 파경(罷經)을 베푼다. 다음으로 정악단이 여민락의 한 갈래인 장엄하고 웅장한 해령(解令)을 연주하여 베푼다. 이어서 무용단이 궁중정재인 학연화대무(鶴蓮花臺舞)를 베푼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대접했는데도 역신들은 물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세를 과시하듯 역신무를 요란하게 춘다.

 

 

 

《용재총화》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이 붉은 옷과 붉은 두건을 쓰고 역신 역할을 맡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공연에서는 붉은 가면을 쓴 어른 12명이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지전을 들고 역신 무리의 춤을 춘다.

 

관객들의 눈길을 끈 것은 정악단 연주 때 등장한 ‘박’은 물론 ‘축’과 ‘어’, ‘편종’과 ‘편경’ 등이었다. 이런 악기를 보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연주를 직접 듣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악관현악단이 서양 교향악단을 본떠 지휘자를 두었지만, 우리 전통음악에서는 지휘자가 아니라 집박이 박을 울려 시작과 끝을 알리고 있음을 알게 했다.

 

역신 무리의 춤을 보고 난 뒤 본격적인 놀이로 역신을 쫓는 구나희(驅儸戱)의 시간이다. 역신을 쫓는 데는 우선 방상시 넷이 앞장서서 방상시무(方相氏舞)를 추며 역신을 위협한다. 뒤이어 오방처용이 나타나서 신라 때부터 전해내려온 처용무(處容舞)로 역신을 쫓아내려 한다. 또 쥐, 소, 범 등 열두 가지 띠 동물이 각자 탈을 쓰고 등장하여 십이지신무(十二支神舞)를 추며 역신들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인다. 하지만, 역신들은 지지 않고 오히려 십이지신이 물러난다. 그러자 국립국악중학교 12명의 학생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들고 들어와 '훠이 훠이 물렀거라' 동요를 부르며 진자(侲子)를 추어 역신들을 몰아세운다. 역시 희망은 어린아이에게서 나오는 법, 수세에 몰린 역신들이 드디어 물러난다.

 

 

 

 

이제 이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기태평(祈太平) 곧 ‘태평신년을 기원하다’다. 모두가 힘을 합쳐 역신을 물리쳤으니 이제 대취타대가 언덕에 올라 역신을 물리치고 승리했음을 알리며 화려한 불꽃놀이를 시작하는데 그것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리곤 세 가지 정재를 하나로 엮어 구성한 향아무락(響訝舞樂)으로 구나를 축하하고 태평한 새해를 기원한다. 그리고 모두 함께 "훠어이 물렀거라"를 외치며 불꽃놀이 속에 나례를 마친다.

 

 

공연을 보고 크게 다가온 생각은 우리 겨레의 악귀를 물리치는 방법이 그저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잘 달래고 대접해서 보내는 데 있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신라 때부터 전해온 처용무의 특징이 자기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을 분노가 아닌 풍류와 해학으로 쫓아낸다는 데 있었지 않은가?

 

소리꾼과 연희패가 연신 “너도 먹고 물러나라. 너도 먹고 물러나라”라고 소리하며, 악귀를 먹이는 것은 물론 음악과 춤으로 달래 보내려 했음을 강조하고 있음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힘과 무기를 통하는 것이 아닌 설령 악귀임에도 악한 마음을 먹지 못하게 대접해서 보내려 했음을 공연은 강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