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친구가 나의 어려움을 보고 첩을 얻을 것을 권했다. 아무개 씨의 딸과
중매를 드는 사람이 있어 날짜까지 잡았는데 겨우 6,7일을 남기고 있었다. 이때
처가 들어왔다. 일이 이렇게 되어 좋은 일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정말 우스운
일이다. 5필의 말과 6명의 노비가 한꺼번에 오니 어떻게 먹고살까? 그렇지만, 어찌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 치려고”
위 글은 17세기 유생 이필익이 유배지에서 있었던 일을 적은 ≪북찬록(北竄錄)≫에
있는 내용입니다. 흔히 유배생활이라고 하면 무척이나 고초를 겪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대부분 고생이 심했겠지만 일부는 이처럼 출장 가거나 여행 간
것처럼 편하게 지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유배지가 유배자와 같은 정치적
성향의 인물이 다스리는 곳이면 오히려 재충전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