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런데 백일기도가 끝나기 전에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어느 날 아내는 매우 기분이 씁쓸하다며 남편에게 하소연하였다. 교회에서는 입시가 점점 가까워 오자 고3 학부형을 모아서 특별히 함께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아내가 그 모임에 가보니 상대방의 자녀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시간이 있단다. 그런데 기도는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면서 댁의 자녀는 어느 학교를 목표로 하는가를 묻더라는 것이다.
아들의 현재 점수로는 ㅅ대는 꿈꿀 수가 없다. 김 교수가 보기에는 ㅇ대나 ㄱ대도 바라보기가 어렵겠다. 아내 말에 따르면 다른 엄마들의 목표대학을 들어보니 대부분이 ㅅ대라는 것이다. 그 순간 아내는 ‘창피하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뒤 아내는 고3 학부형의 특별기도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김 교수가 들어보니 그 일은 목사님이 잘못한 것 같다. 고3 학부형들이 얼마나 신경이 예민한 상태에 있는가를 고3 자녀가 아직 없는 목사님이 잘 모르고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파편이 김 교수에게 튀었다. 아내는 더욱 새벽 기도에 매달리고, 웬일인지 그 사건 이후에는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대답인즉 우리가 경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기도할 때 목욕재계하고 새벽에 정화수를 떠다 놓고서 정성으로 기도하는 것을 본받자는 것이냐고 김 교수가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내는 괜히 신경질을 내면서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별거 아닌 별거가 수능시험 때까지 지속될 모양이니 김 교수는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사태가 이렇게 진전되자 독신 아닌 독신이 된 김 교수는 엉뚱한 데로 관심이 갈 수밖에. 어느 날 미스 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반갑게 받는다.
“그동안 잘 있었어?”
“네, 오빠.”
“그런데 자네 주소를 좀 불러봐.”
“왜 그래요? 오빠! 내게 선물 보내주려고?”
“그래 어떻게 알았니? 너 귀신이 다 되었구나.”
김 교수는 주소를 알아낸 뒤에 법정스님의 《무소유》 책을 등기로 보냈다. 김 교수는 법정스님을 좋아한다. 특히 법정스님의 무소유 책에 반했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소유 책을 선물하는 습관이 생겼다. 자기도 법정스님처럼 그렇게 산에서 살면서, 또 그렇게 글도 잘 쓰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김 교수가 사실은 기독교인인데 법정 스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렇지만 좋은 것은 그저 좋지 꼭 이유를 댈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모든 행동에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산악인에게 왜 위험을 무릅쓰고 히말라야의 설산에 오르느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내가 지금까지 들은 가장 멋있는 대답은 “산이 거기에 있어서”라는 대답이다. 산악인에게 왜 산에 가느냐고 묻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한식을 좋아하며 일본 음식은 입에 맞지 않는다. 나더러 왜 일본 음식을 싫어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그저 싫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익은 김치를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생김치를 좋아한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좋고 싫다는 감정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입맛에 익은 김치가 좋은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선천적인 감각이다. 나는 익은 김치가 그냥 좋다.
왜 기독교인이면서 불교 스님을 좋아하느냐? 이런 질문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너무 획일적으로 보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기독교인이거나 모든 사람이 다 불교인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더 나쁜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단적인 증거로 서양의 중세는 암흑시대로 평가받고 있지 않는가? 이런 사상, 저런 사람이 섞여서 함께 살고 있는 그런 세상이 “다양성이 있어서 좋다”라고 김 교수는 생각한다.
생태계로 예를 들면, 종(種)이 많은 생태계가 다양한 생태계이다. 다양한 생태계는 충격에도 매우 안정적이다. 일부가 파괴되더라도 쉽게 회복이 된다. 그렇지만 한 종류의 생물체로만 이루어진 생태계는 불안정하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약하다. 인간 세상이나 동식물 세상이나 다양할수록 좋은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