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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유성룡 선생 혼을 불러내 극락왕생 발원하다

남촌문화포럼 주최 <제417주기 서애 유성룡선생 추모문화제> 열려
노은주 명창의 뜻깊은 초혼제 공연, 빛을 발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유성룡은 조정에 선 지 30여 년, 재상으로 있은 것이 10여 년이었는데, 임금이 특별히 사랑하여 귀를 기울여 그의 말을 들었다. 경악(신하들이 임금에게 유교의 경서와 역사를 가르치는 일)에서 선한 말을 올리고 임금의 잘못을 막을 적엔 겸손하고 뜻이 극진하니 이 때문에 상이 더욱 중히 여겨 일찍이 말하기를 ‘내가 유성룡의 학식과 기상을 보면 모르는 사이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정성을 다하여 따를 때가 많다.’라고 하였다.”

 

위는 《선조실록》 211권, 선조 40년(1607) 5월 13일 기록으로 ‘전 의정부 영의정 풍원 부원군 유성룡의 졸기’ 부분으로 “임금이 유성룡의 학식과 기상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정성을 다하여 따를 때가 많다.”라고 한 부분이 소개되어 있다. 백성을 버리고 의주를 건너 명으로 도망가려 했다가 유성룡의 간곡한 만류로 국경을 넘지 않았음을 물론 조선시대 최악의 임금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선조도 류성룡을 이렇게까지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그 서애 유성룡이 재상이었을 당시 그의 생가가 있었던 서울 중구 필동 서애길에서는 어제(6월 7일) 저녁 4시 ‘남촌문화포럼’(대표 김복규) 주최, ‘(사)한국민속전통진흥회’(이사장 조동준) 주관으로 <제417주기 서애 유성룡선생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추모문화제는 1부 기념행사와 2부 공연행사로 나눠 열렸다.

 

 

먼저 기념행사에는 ‘남촌문화포럼’ 김복규 대표의 인사말씀에 이어 박찬종 전 5선 국회의원과 이혜훈 전 3선 국회의원, 남월진 중구문화원 원장, 중구의회 길기영 의장, 옥재은 서울시의회 의원 등이 축사를 했다. 특히 남촌문화포럼 고문을 맡고 있는 박찬종 전 의원은 “서애 선생이 쓰신 《징비록》을 국회의원들에게 모두 보내고 독후감을 받아야 한다.”라고 해 큰 손뼉을 받았다.

 

기념행사에는 서애선생기념사업회 류을하 상임이사의 ‘추모문화제 역사적 배경’ 낭독이 있었고, 추모제례(고유제)가 이어졌다. 추모제례는 초헌관으로 남촌문화포럼 김복규 대표가, 아헌관으로는 필동주민자치위원회 박양춘 회장이, 종헌관에는 류승우 전 국회의원(풍산류씨대종회)이 잔을 올렸다.

 

 

 

드디어 2부 공연행사가 열렸다. 공연행사의 진행은 (사)한국민속전통진흥회’ 조동준 이사장이 맡았는데 “서애 선생은 국가 질서가 무너지고 백성들이 조정을 신뢰하지 않는 척박한 시대 상황 속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어리석은 임금을 설득하고 분노한 백성들을 달래면서 쓰러져 가는 조선의 국체를 지키기에 동분서주하셨던 조선조 명재상이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오늘 초혼제 공연을 통해 서애 선생의 혼백을 불러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길닦음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공연행사를 소개했다.

 

이어서 장구 김은하, 아쟁 서정호의 반주에 맞춰 국가무형유산 심청가 이수자이며, (사)한국민속전통진흥회 부사이장 겸 남촌문화포럼 국악분과위원장 노은주 명창이 임상래 명창, 조경주 명인과 함께 초혼제(招魂祭) 공연을 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은 조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을 때 이순신, 권율 장군을 천거하여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했음은 물론 이순신 장군이 선조의 질투에 죽을 위험이 이른 것을 다시 살려내 전장에 나갈 수 있도록 한 명재상이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이순신 장군은 알아도 서애 유성룡 선생을 모르는 안타까움 속에 묻혔다.

 

 

 

이날 공연은 노은주 명창이 그런 명재상 서애 선생을 초혼제 공연으로 다시 불러내 국민께 알리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자리였다. 처절한 목청으로 서애 선생을 부르고 또 불렀다. 아마도 저 지하에서 서애 선생이 다시 불려 오는 거룩한 자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서애선생기념사업회 류을하 상임이사는 서애 선생의 장례에 관해 “서애 선생의 죽음에 자진해서 이루어진 조문 행렬은 1,000여 명에 달했다.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수만 명에 달하는 인파였다. 그리고 도성 길가의 백성들은 ‘우리들이 이 어진 정승을 잃은 것은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잃은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라고 소개한다. 그런 서애 선생을 잊어서는 될 일이던가?

 

 

이날 지나다 우연히 행사를 봤다는 필동의 정일령(57) 씨는 ”내가 사는 필동에 그런 훌륭한 명재상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이순신 장군을 기리면서 서애 선생은 몰랐다는 게 부끄럽다. 이제라도 《징비록》을 읽고 그의 정신을 본받고 알리는 데 힘쓰겠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뜻깊은 행사가 크게 알려지지도 않은 채 열렸고, 그것도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는 작은 장소에서 열렸음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더구나 바깥에서 열린 공연임에도 작은 스피커를 두 대만 설치해 소리가 널리 퍼지지도 않았고 아쟁 소리가 잘 안 들리는 등 음향 문제의 시행착오는 내년부터라도 중구청에서 관심을 두고 개성할 것은 물론 초무문화제가 성대하게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