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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들, 일제강점기와 6·25 돌아봐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류리수ㆍ오성숙ㆍ이윤채, 도서출판 얼레빗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할머니 세대가 ‘가장 예뻤을 소녀시절’에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겪었던 생생한 기록입니다. 열두 분의 할머니와 한 분의 할아버지 증언을 바탕으로 그 당시 청소년들이 경험했던 삶의 단면을 남기고자 했습니다. 이 아카이브는 개인의 기억을 넘어서 우리 민족 공동체가 공유해야 할 소중한 역사적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 엮은이 말-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겪었던 할머니들의 생생한 구술 자료인《내가 가장 예뻤을 때》(도서출판 얼레빗)가 지난 6월 25일 출간되었다.

 

 

“나는 1927년생 퇴끼띠고 98살이야. 퇴끼띠가 새벽에 났기 때문에 어디 가면 먹을 게 많이 생기는 거야.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농사지으셨어. 7살 먹어 어머니 재혼 가고, 12살 먹어 아버지 돌아가서 부모 사랑을 모르고 자랐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일제시대에 지집아(기집애) 공출 보낼 적에 일본에 안 붙잡혀 가게 할라고 우리 고모, 고모부가 시집을 새벽에 보냈어. 너무 일찍 보냈다고. 공출 안 갈라고 내가 15살 10월에 시집을 왔다고. 형제는 나 하나, 외동딸이야.” -정선 출신 김옥련 할머니-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아름답게 꾸며진 결혼식장에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 15살 어린 소녀가 도망치듯 새벽에 시집을 가야했던 세월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실감나지 않는 일’일뿐더러 ‘이해하기 어려운 일’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실화다.

 

그 실화의 삶을 살아낸 열두 분의 할머니는 최순하(보은), 정하원(용산), 조**(황해 연백), 양이분(금산), 전이분례(군산), 김옥련(정선), 황**(일본 교토), 이정희(부산), 김신애(황해 연백), 이**(함평), 정희진(상주), 우찬택(금왕)할머니다. 그리고 특별부록에 실린 권**(문경) 할아버지까지 합쳐서 모두 열세 분이《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주인공이다. (**로 처리된 분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꺼려 이름 대신 표기한 것임)

 

 

“내가 너무 어릴 때고 금산 시골에 살아서 일본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어. 그런데 그 일본 놈들이 유기그릇을 뺏어갖고 싣고 갈 때, 그때는 차가 없으니까 사람이 지고 가잖아. 우리 아버지가 그거 지고 갔었어. 그때 나도 어리지, 내 동생도 몇 살 안 됐지, 그 밑으로 동생 있지, 그래 갖고 우리 엄마 혼자 농사를 지니까 내가 집안일이며 애기보는 거며 다 해야잖아. 조그만 게. (가운데 줄임) 밤에 자다 눈을 떠보니까 아버지가 왔더라구. 낮에 집에 와 있으면 일본 놈들한테 또 잽혀갈까봐 산에 가 있다가, 우리 엄마가 밥을 해서 이렇게 된장하고 싸서 주면 산에 가서 먹고 밤이면 내려와. 옛날에는 도시락이 없으니...”

                                                                         -양이분 ‘밤 손님이 된 우리 아버지’ 가운데-

 

구구절절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번 쥔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한다. 지금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던 시절이 일제강점기이자, 6·25 한국전쟁 시기가 아니었을까? 이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줄 할머니나 할아버지들 조차 우리 곁에 없다. 그나마 ‘기억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분들은 노쇠하다. 그런 분들의 마지막 증언을 듣고자 류리수, 오성숙, 이윤채 세 명의 작가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책이 《내가 가장 예뻤을 때》다. 이 책을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28일, 3인의 작가 가운데 류리수 박사를 대표로  만났다. 다음은 대담 내용이다.

 

- 이 책을 펴내게 된 계기는?

 

  "10여 년 전부터 일제강점기 때의 소녀를 대상으로 한 대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다가, 지난해 초,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의 오성숙 연구원과 함께 서벌턴 (subaltern, 여성이나 노동자, 이주민과 같이 권력의 중심에서 배제되고 억압을 당하는 사람) 연구의 한 고리로 직접 발로 뛰어 구술작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여기에 평소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던 이윤채 선생님이 합세하여 셋이서 구술팀을 꾸려 온 나라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취재하였고 그 결과물이 이번 책입니다."

 

- 대담한 할머니들을 어떻게 선정했나?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 대상 연령(16~18살)이었던 95살 정도의 할머니를 구술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할머니들은 계양노인전문요양원 박혜숙 원장님과 직원분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친구나 지인들의 도움으로 같은 교회 교인이나 부모님을 소개받았습니다. 부모를 소개해 준 분들로부터는 대담 대상자인 할머니들에게서 토막토막 들었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구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들 자신이 부모님의 소중한 젊은 날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 할머니들의 구술을 채록하며 느꼈던 점은?

 

  "구술은 작성해 둔 질문지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되, 당시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많이 담고자 했습니다. 특히 역사책에서만 익혔던 일제강점기의 쌀 공출 사건이 실제로 할머니들의 삶 속에서는 어떻게 작용했으며, 식량난이 가중되던 시절의 삶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어말살, 궁성요배, 신사참배 등 일제의 황민화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정신대 동원의 실상과 할머니들이 정신대를 피하려고 조기 결혼을 강요당한 뒤 층층시하 시집살이의 고단했던 노정은 어떠했는지도 대담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일제강점기 못지않게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에 짓눌인 구술을 채록하면서 이 땅에 두 번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 대담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이 책은 할머니들과 나눈 구술 내용을 최대한 살리되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하나의 질문을 하면 곁가지로 두서너 가지의 이야기가 새끼 쳐나가는 것을 빠짐없이 채록한 뒤 중복된 것을 하나로 가다듬는 작업과 특히 할머니들의 과거사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점 때문에 흐름에 지장이 없는 한 이를 조정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습니다."

 

- 이 작업을 하면서 보람 있었던 점은?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 시기에 청소년 시절을 보낸 열세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서로 공통된 점이 느껴졌고 이러한 한분 한분의 삶이 모여 역사의 강물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소중한 ‘기억’을 통해 격동의 시기를 살아낸 우리 할머니들의 ‘가장 예뻤을 때’의 모습이 살아있음을 또한 느꼈습니다. 이 책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팀원 간의 화합, 소개자, 구술자, 후원자, 출판 관련자가 진실한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정성을 모아 공동으로 만든 책이기 때문에 더욱 뜻깊다는 생각입니다."

 

텀블벅으로 후원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후원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원래 이 구술작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 누리집의 서벌턴연구 마당에 아카이브로 저장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으로 구술을 받으러 다닌 귀중한 자료이기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직접 자료구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모두 76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책 출판비를 감당할 수 있었고 이후 입소문으로 추가 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혼자 의미 있는 책을 만드는 것도 훌륭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많은 분의 동참으로 만들어진 공동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뜻깊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원자들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도서출판 얼레빗, 2024.6,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