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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쉬다’와 ‘놀다’

[우리말은 서럽다 40]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쉬다’와 ‘놀다’는 싹터 자라 온 세월이 아득하여 뿌리를 깊이 내렸을 뿐만 아니라 핏줄이 본디 값진 낱말이다. 핏줄이 값지다는 말은 사람과 삶의 깊은 바탕에서 태어났다는 뜻이고, 사람이 목숨을 누리는 뿌리에 ‘놀다’와 ‘쉬다’가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삶에서 그처럼 깊고 그윽한 자리를 차지한 터라 여간 짓밟히고 버림받아도 뿌리까지 죽어 사라질 수가 없는 낱말인 것이다.

 

‘쉬다’는 ‘움직이다’와 짝이 되어 되풀이하며 사람의 목숨을 채운다. 엄마 배 안에 있을 때는 ‘쉬다’와 ‘움직이다’를 아주 잦게 되풀이하다가 태어나면 갑자기 되풀이가 늘어진다. 늘어진다 해도 갓난아기는 하루에 여러 차례 되풀이를 거듭한다.

 

배고프면 깨어나 울면서 움직이다가 젖을 먹이면 자면서 쉬는 되풀이를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듭하다가, 예닐곱 살을 넘어서면 드디어 하루에 한 차례 ‘쉬다’와 ‘움직이다’를 되풀이한다. 되풀이는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맞추어 밤이면 쉬다가 낮이면 움직인다. 이처럼 몸 붙여 사는 환경에 맞추어 되풀이하던 ‘쉬다’와 ‘움직이다’가 멈추면 사람의 목숨도 끝난다.

 

‘쉬다’와 ‘움직이다’는 삶에서 맡은 몫도 서로 짝을 이룬다. 쉬는 것이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고, 움직이는 것이 없으면 쉴 수가 없다. 쉼이 제 몫을 잘하면 움직임도 제 몫을 잘할 수 있고, 움직임이 제 몫을 잘하면 쉼도 제 몫을 잘할 수 있다. 잘 움직이려면 먼저 잘 쉬어야 하고, 잘 쉬려면 먼저 잘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잘 사는 열쇠며 길이다.

 

한때 우리는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하는 방송을 들으며 새벽잠을 쫓느라 안간힘을 다한 적이 있었고, 근면과 근로를 값진 삶의 덕목으로 받들어 쉬지 말고 일하라는 침략 교육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이런 길은 목숨의 두 짝을 살려서 값진 삶을 온전히 가꾸는 길이 아니었다.

 

‘놀다’는 ‘움직이다’의 반쪽이다. ‘움직이다’의 다른 반쪽은 ‘일하다’이다. 그러니까 ‘놀다’와 ‘일하다’가 짝이 되어 ‘움직이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놀다’는 목숨이 기쁨을 맛보도록 뒷받침하는 움직임이고, ‘일하다’는 목숨이 살아남도록 뒷받침하는 움직임이다. 이들 두 가지 움직임이 짝을 이루어 하나는 목숨을 살리고, 하나는 목숨의 값어치를 드높인다.

 

그러나 ‘놀다’와 ‘일하다’는 ‘쉬다’와 ‘움직이다’처럼 처음부터 짝을 이룬 것이 아니다. 사람의 움직임은 본디 ‘놀다’ 뿐이었다. 엄마 배 안에 있을 적에는 움직이는 것이 고스란히 노는 것이다. 이때 사람의 목숨은 ‘쉬다’와 ‘놀다’로만 이루어져서 ‘움직이다’는 그대로 ‘놀다’였다. 사람의 목숨이 ‘쉬다’와 ‘놀다’로만 이루어진 상태는 태어난 뒤로도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

 

자연환경과 사회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은 예닐곱 살을 넘어서야 ‘움직이다’가 ‘놀다’와 ‘일하다’로 갈라져 나간다. 이때부터 ‘쉬다’는 ‘놀다’와도 짝을 이루고 ‘일하다’와도 짝을 이루어, 놀다가도 쉬고 일하다가도 쉬는 것이다.

 

그러나 어릴 적의 ‘놀다’와 ‘일하다’는 또렷이 갈라지지 않아서 ‘놀다’인지 ‘일하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나이가 들면서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은 다른 것이 되고, 서로 뒤섞일 수가 없는 것으로 떨어진다. 혼인하고, 집안을 이루고, 아들딸을 낳아 기르면 ‘움직이다’는 ‘일하다’로 거의 채워지고, 그런 사정은 아들딸이 짝을 만나 집안을 이루는 때까지 누그러들지 않는다.

 

아들딸이 모두 자라서 집안을 이루고 저마다의 삶을 찾아가면 그제야 ‘일하다’에서 벗어나지만, 그때는 이미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가까웠다. 이것이 ‘놀다’와 ‘일하다’가 목숨의 ‘움직이다’를 갈라 차지하는 사정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도 자연환경과 문화 풍토에 따라 사람마다 사회마다 들쭉날쭉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놀다’와 ‘일하다’가 짝을 이루어 움직임을 채우고, 그것들이 맡은 몫도 서로 짝을 이루는 것은 틀림없다. ‘놀다’가 제 몫을 잘하면 ‘일하다’도 제 몫을 잘할 수 있고, ‘일하다’가 제 몫을 잘하면 ‘놀다’도 제 몫을 잘할 수 있다. 일을 잘하려면 먼저 잘 놀아야 하고, 놀기를 잘하려면 먼저 일을 잘해야 한다. 이것들이 가지런히 짝을 이루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삶은 병들고 망가진다.

 

그런 까닭으로, 인류의 문명이 산업 사회로 들어서면서 ‘일하다’ 쪽으로 기울어지고 기계 문명의 막바지에 다다른 오늘날에는 우리네 삶이 걷잡을 수 없이 병들고 망가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놀다’ 쪽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까닭이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