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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낱말부터 풀이까지 배달말로 쓴 《푸른배달말집》

한자말 돌려막기한 국어사전을 버려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은 뜻깊은 578돌 한글날이다. 한글이 생기기 전에도 우리말은 있었지만 ‘그 말을 담을 수 있는 글자’가 없었던 탓에 오롯이 우리말을 담는 글자를 만들어 온 누리에 퍼지게 한 것이 1446년, 세종임금의 <훈민정음> 반포다. 그로부터 578돌을 맞이하는 때, 아주 뜻깊은 우리말 말집(사전) 《푸른배달말집》(한실과 푸른누리)이 세상에 나왔다. 이 말집을 이야기 하기 전에 말해 둘 것이 있다.

 

글쓴이가 이 책을 지은 한실 님을 만난 것은 2014년 4월이니 만 10년이 지났다. 그때 한실 님은 빗방울이라는 덧이름(호)를 쓰며 우리말 살리기와 고장 삶꽃(지역 문화) 살림이로 삶을 바친 김수업 교수님을 만나게 되는 데 빗방울 님은 ‘우리말을 살리고 가꾸어 서로 뜻을 쉽고 바르게 주고받고 겨레말 속살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풀이한 책을 짓자’는 데 뜻을 모으고 한실 님을 비롯하여 우리말글 살이에 뜻을 두어온 일곱 분과 함께 ‘배달말집’ 첫 삽을 떴다.

 

 

그 일곱 분은 스승인 빗방울 님을 비롯하여 골잘 최인호, 날개 안상수, 들꽃 주중식, 마주 박문희, 한꽃 이윤옥, 한실 최석진 님으로 이들은 <배달말집>의 ‘세움이’ 들이며, 그 뒤 풀잎 황대길 님이 함께하여 배달말집 틀을 만들었고, 이어 고종민, 구자행, 김강수 님 등 ‘이끔이’(스물세 분), 이어 곽유정, 권복순, 권유경 님 등 ‘이룸이’(쉰 세분) 등 첫 삽을 뜬 지 1년 만에 온 사람(100명)에 이르는 일꾼 곧 <겨레말살리는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하고자 마음을 모았다. 1) 겨레말살리는이들은 ‘무얼 하려는가?’라는 물음에 ‘겨레말을 살리고 가꾸어 널리 사람 사이에 서로 뜻을 쉽고 바르게 주고받음으로써 겨레 삶이 거룩하게 드높아지도록 하고자 한다. 먼저 할 일 알맹이는 겨레말 속살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쉽게 풀이한 책을 만들어 펴내는 일이다. 2) ‘왜 이런 책을 펴내고자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⑴겨레말 풀이를 누구나 시원히 알아볼 수 있도록 제대로 해놓은 책이 없어서. ⑵많은 낱말 풀이가 비슷한 낱말로 돌려막기를 해놓아서. ⑶겨레말 노른자위인 토박이말을 제대로 찾아 싣지도 풀이하지도 않아서. 제대로 된 겨레말 풀이 책을 만들어 겨레 말살이를 아름답게 드높여서 겨레삶을 거룩하게 떨치도록 돕고 싶어 이런 책을 펴내고자 한다. 3)‘누가’ 이런 책을 만들고자 하는가? 겨레말살리는이들 온 사람(100명)이 힘과 슬기를 모아 만들고자 한다.

 

 

 

이렇게 푸른 꿈을 꾸며 ‘배달말집’을 만들려고 달려가던 차에 스승님이신 빗방울 님께서 병환으로 2018년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선장을 잃은 뱃사람들은 어떻게든 말집 일을 이어가야겠다는 마음들은 갖고 있었지만, 선뜻 모임을 열지 못하고 있다가 불쑥 찾아온 코로나19로 모임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묵묵히 낱말을 찾고 풀이를 이어간 분이 있었으니 겨레말살리는이들의 세움이인 한실 님이다. 한실 님은 모둠살이(지역공동체) ‘푸른누리’에서 빗방울 님의 뜻을 이어받아 여섯 해 동안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마침내 《푸른배달말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푸른배달말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어사전(國語辭典)>이지만 국어사전과 크게 다른 점은 배달겨레가 오랫동안 써오던 배달말을 골라 올리고 낱말 풀이를 배달말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보기를 들면, 미숙련공이라는 말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아직 일을 능숙하게 익히지 못한 직공’이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푸른배달말집》에서는 배달말로 ‘벗장이’라는 말을 올려놓고 있다. ‘벗장이?’라고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겠지만 말 풀이를 ‘일에 익숙하지 못한 바치, 또는 무엇을 배우다 그만둔 사람’이라고 풀어 놓고 있어 누구라도 알기 쉽다.

 

 

 

또 한 보기를 들면, 요즘 누구나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푸른배달말집》에서는 ‘손말틀’로 올리고 풀이하기를 ‘손에 들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걸고 받는 작고 줄없는 말틀 ⇐ 핸드폰, 휴대폰, 스마트폰’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편,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휴대폰(携帶phone): 휴대 전화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폰, 핸드폰’이라고 멋없이 풀이하고 있다.

 

《푸른배달말집》을 지은 한실 님은 말한다. “오늘날 널리 쓰는 한글왜말은 조금도 우리말이 아니다. 우리말은 우리 겨레가 삶을 비롯할 때부터 지어내어 오랜 겨레 삶 내내 갈고 다듬어 온 배달겨레 말이다.”라고 말이다. 곧 낱말부터 풀이까지 오로지 배달말로만 지은, 배달말을 갈무리한 겨레 새 말집(사전)이 《푸른배달말집》인 것이다. 책은 나날삶(일상)에서 마땅한 듯 쓰이는 한자말과 서양말에 가려져 잊힌 우리말을 찾아 놓아 말집 어느 쪽을 펼치더라도 구슬 같고 깨알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만날 수 있다. 《푸른배달말집》 속에 나오는 낱말은 모두 45,000개가 넘으며 1,560쪽에 이른다. 그 어느 단체도 하기 힘든 일을 말없이 여섯 해 동안 해낸 지은이 한실 님을 어제(8일) 낮 12시 반, 서울 인사동에서 만나 말집이 나오기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낱말부터 풀이까지 오로지 배달말로만 지었다

《푸른배달말집》을 펴낸 지은이 한실 대담

 

 

 

- 흔히 말집(사전)은 나라나 국어단체 등이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인이 이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말집 일은 나라가 해야 할 일인데 하지 않고, 말씀하신 그런 모둠(단체)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으니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듯이 우리말집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제가 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나라지킴이가 해야하지만, 동학 때 나라지킴이가 왜(일본)에 붙어 백성을 억누를 때 여름지기(농민) 들이 나서서 나라를 지키려 싸운 것과 같은 꼴이지요.”

 

- 이 일을 맨 처음 생각한 것은 언제이며 말집을 펴내기까지 얼 만큼의 시간이 걸렸는지요?

 

  “2,008해쯤 잉글말(영어)로 된 스승 가르침을 우리말로 뒤칠 때 우리말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했으며, 그 뒤 여러 배달말갈이(국어학자)한테 말틀(전화)로 물어도 보고 우리 말집(사전)이란 말집은 다 사서 찾아보았지만, 한자말만 잔뜩 올려놓고 그것도 돌려막기 풀이를 해놓은 것이 많아 쉽게 풀이한 우리말집을 지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2014해 봄에 빗방울 님(김수업 교수)을 만나 우리 힘으로 지어보자고 말씀드렸는데 빗방울 님이 마음을 움직여 세움이들과 겨레말살리는이들이 함께하였으니, 처음부터 치면 열 한해가 걸린 셈입니다.”

 

- 흔히 말은 소통의 도구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실 님이 주장하는 것처럼 옛 배달말을 찾아 쓰거나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쓸 때 상대방이 못 알아듣게 되면 소통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요? 그에 관한 생각은?

 

  “우리말을 가르치고 배우고, 우리말을 익혀 쓰면 쉽게 풀릴 일이지요. 종살이(식민지 삶)는 끝났지만, 종살이 배움(식민지 교육)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라를 찾은 지 여든 해 가까워져 오는 데도 힘 있는 이들과 배운 사람들이 왜말(일본말)에서 못 벗어나니, 이 힘에 밀려 여느 백성들까지 왜말살이(일본말 생활)을 하게 된 겁니다. 우리 겨레 누구라도 굳게 마음 먹고, 스스로 왜말살이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하고 말버릇을 바꿔가다 보면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입니다.”

 

- 한실 님은 동서남북을, 동(새), 서(하늬, 또는 저), 남(마), 북(노)라고 하셨는데 우리말을 사랑하는 어떤 분은 동서남북을 동(새), 서(갈), 남(마), 북(뒷)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말을 사랑하는 분들이 열이면 열 다 다르게 우리말로 바꾸어 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서풍은 하늬바람, 또는 갈바람이라 하고, 북풍은 높바람, 노파람, 뒷바람, 된바람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저마다 다르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도 말하니까 북을 뒷, 서를 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나 서는 하늬, 북은 노를 더 자주 씁니다. 사전만 해도 말모이, 말광, 말집 따위의 말이 있는 것처럼 하나의 낱말을 여러 말로 쓰다 보면 끝에는 ‘좋은 말’이 남게 됩니다.”

 

- 《푸른배달말집》을 펴내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다면 한 말씀 주십시오.

 

  “우리말을 붙잡을 수 있게 우리글을 만들어 낸 분들께 가장 크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우리말글살이를 있게 한바탕을 마련한 한힘샘(주시경) 님, 뒤를 이어 우리말을 살려 온 외솔(최현배) 님을 비롯한 여러 님께도 고맙게 느낍니다. 이오덕 님과 빗방울(김수업 교수) 님은 살아계실 때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아름다운 우리말 찾아쓰기 사전》을 내신 김정섭 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살아있는 우리말의 역사》를 쓴 흥윤표 님, 말과 바탕 공부와 우리말 구조와 체계에서 우리말 속살 풀이를 깊게 해서 우리말을 드높인 최봉영 님께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울러 우리말을 살려 쓰는 일을 몸소 해가면서 뜻을 함께하는 날개 님을 비롯하여 처음에 큰 뜻을 함께 펼친 ‘겨레말살리는이들’ 벗님들께도 고마운 마음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편, 올림말을 고르고, 풀이를 하고, 보기말 일을 함께한 나무 님, 높나무 님, 별밭 님, 아침고요 님, 살구 님, 고르 님, 달개비 님, 아무별 님, 아라 님, 보배 님, 미리내 님을 비롯하여 푸른누리 사람들은 몸으로 어려운 일을 꿋꿋하게 함께 해 왔습니다. 그리고 늘 깨끗한 우리말을 써서, 좋은 우리말 책을 여러 가지 펴내어 우리를 이끌어 준 숲노래님께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푸른배달말집》을 지은 한실 님 책에 대해 ‘숲노래(최종규) 말꽃짓는 책숲지기’는 이렇게 말했다.

 

“후다닥 읽고서 외우려 한다면, 외우지도 못하지만, 마음에 남지도 않습니다. 느긋느긋 읽으면서 나긋나긋 새길 적에, 비로소 온 마음으로 스며들면서, 생각이 깨어나는 빛을 느낄 만합니다. 차근차근 곱씹고 되새기면서, 즐겁게 손보고 더하고 다듬고 고치고 살피는 매무새로, 우리말을 이제 처음으로 익힌다고 여기면서 눈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낱말책인 《푸른배달말집》을 곁에 놓는다면, 하루하루 자라나고 말결을 느끼면서, 차곡차곡 북돋우는 말살림을 누릴 만하리라 봅니다.”

 

《푸른배달말집》(안그라픽스)을 지은 한실 님은 《우리말 사랑》(얼레빗)도 펴냈다. 한글날을 맞아 이 두 책을 통해 ‘왜 우리는 우리말을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우리말을 사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