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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벌판에 새겨진 피의 역사를 보라!

범도루트 기행문, 이진 작가의 《만주에서 길을 묻다》를 읽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천지를 영접한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짜릿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 첫 소절에 나오는 그곳이다. 그 천지가 바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그곳! 하늘이 허락한 순간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것도 '광복절에 천지라니', 연길파옥투쟁과 15만 원 쟁취, 창동학교 등 한인민족학교, 봉오동ㆍ청산리 대첩의 수많은 영웅이 떠올랐다. 그들이 꿈꾸었던 해방된 조국, 통일된 조국을 기원하며 백두산 천지와 북녘 하늘을 가슴에 담았다.”

 

이는 이진 작가가 쓴 《만주에서 길을 묻다》(북랩.2025.5.) 속에 나오는 ‘광복절에 오른 백두산 천지와 장백폭포’에 관한 글 일부다. 흔히 ‘천지를 보았다, 천지에 올랐다. 천지에 갔다’라고 쓰는 데 이진 작가는 ‘천지를 영접했다’라고 썼다. 그리고 작가는 천지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뛴 수많은 선열을 떠올렸으며 (과거), 희망으로 통일된 조국을 염원(미래)했다’라고 했다.

 

천지에서 과거의 독립운동가들, 현재의 자신, 그리고 미래의 통일된 조국을 꿈꾸는 작가의 마음에 완전히 공감한다. 글쓴이는 이 구절을 읽으며 지난해 광복절을 앞두고 (사)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소속 대학장학생들을 인솔하고 천지를 ‘영접’한 그 감동이 되살아나 자욱한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던 천지의 신비로운 모습을 되새김해 보았다.

 

《만주에서 길을 묻다》를 쓴 이를 이진 ‘작가’라고 했지만, 사실 그의 이력은 좀 색다르다. 그것은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까닭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책은 오랜 세월 민주화운동과 지방정치 현장을 살아온 저자 이진이, 인생 1막을 마무리하고 2막을 준비하며 기록한 역사적 성찰이자 감정의 결실이다. 저자는 만주의 땅을 밟고, 항일무장독립전쟁의 흔적을 따라가며, 우리가 잊고 지낸 영웅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되살린다. '범도루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정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피로 지켜낸 민족의 기억을 되찾는 작업이다. 연길감옥의 파옥투쟁, 15만 원 쟁취 사건, 창동학교 교사들의 헌신과 같은 장면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과거를 외면한 채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또한 이 책은 지방자치 현장에서 느낀 저자의 경험과 함께, 일상속에서 놓치기 쉬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만주 들판에서, 연길 감옥에서, 그리고 훈춘의 무궁화 한 송이까지. 독자들은 이진의 시선을 따라 잊힌 역사 속 인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싸움이 지금 우리의 삶을 지탱한다'는 믿음, 그것이 이 책의 시작이며 끝이다.”

 

어떠한가! 이쯤 되면 이 책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구태여 하지 않아도 좋을 법하다. 그런데도 이 책을 소개하기로 맘먹은 까닭은 다른 데 있다. 올해 4월 16일, 글쓴이는 자신을 이진이라고 소개한 낯선 번개글(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바로 그가 이 책을 쓴 이진 작가다.

 

 

“저는 광주광역시의회에서 운영수석전문위원으로 근무하는 이진입니다. 올해 연말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작년 만주무장투쟁학교인 '범도루트'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공부를 했습니다. 그 자료를 엮어 책을 출간하려고 합니다. 김숙경과 황병길 가족들의 독립 전쟁도 그 내용에 포함됩니다. 특히 선생님의 시는 김숙경의 인생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훈춘에 곱게 핀 무궁화 꽃 김숙경' 전문을 실으려고 하니 선생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의 졸저에 선생님 '시 전문'과 《서간도에 들꽃 피다》 표지를 실을 수 있도록 허락,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이었다.

 

물론 나는 흔쾌히 답을 했다. 그러고는 이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정성스러운 사인을 한 《만주에서 길을 묻다》 책을 받아 들고 무척 기뻤다. 그것은 나의 시가 수록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이진 작가가 만주의 독립운동사에 깊은 관심을 두고 공부를 했다는 점과, 훈춘역의 여성독립운동가인 김숙경 지사의 이름을 불러준 그 아름다운 그 마음 때문이었다.

 

젖먹이 어린 핏덩이 밀치고 / 남편 간 곳을 대라던 순사 놈들 / 끝내 다문 입 / 모진 고문으로도 열지 못했지 / 구류 열흘 만에 돌아온 집엔 / 엄마 찾다 숨진 아기 차디찬 주검 위로 / 차마 떠나지 못한 영혼 / 고추잠자리 되어 맴돌았지 / 활화산처럼 솟구치던 분노 / 두 주먹 불끈 쥐고 뛰어든 / 독립의 가시밭길 / 아들딸 남편 모두 / 그 땅에 묻었어도 / 항일의 깃발 놓지 않던 마흔네 해 삶 / 훈춘의 초가집 담장 위 / 한 송이 무궁화꽃으로 피어났어라. - 훈춘에 곱게 핀 무궁화꽃 ‘김숙경’, 이윤옥 《서간도에 들꽃 피다》 4권 수록-

 

나는 지금도 이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가녀린 체중으로 태어난 글쓴이의 쌍둥이 손자녀(지금은 2년 6개월로 정상 성장 중)들이 엄마ㆍ아빠 그리고 할머니ㆍ할아버지 일가친척들의 지극정성으로 곱게 크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젖먹이 어린 핏덩이’를 놔두고 형무소로 끌려가야만 했던 그 어미의 심정도 심정이지만, 일제강점기 일제 순사들의 인간 말종이자 극악무도의 극치를 보이던 행태는 용서할 수 없다. 이러한 고통을 겪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다. 그만큼 일제강점기, 조선의 어머니들은 피눈물 나는 삶을 살았다.

 

《만주에서 길을 묻다》는 1부 만주 답사편과 2부 언론사 기고문(2014-2024)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1부 답사편은 장편소설 《범도》를 쓴 작가 방현석 선생과 함께 현지답사에 참여한 ‘범도루트’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선열들의 무장톡립투쟁은 1900년대 초 국내진공작전에서부터 1945년까지 무려 40년 이상 지속된 전쟁이었습니다. 참여자도 최대 수십만에 이를 것입니다. 서일의 대한군정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북간도에만 해도 40여 개의 단체가 활동했습니다. 서로군정서는 임시정부 산하 독립군 부대로 편제됐고 1919년 5월 신흥무관학교를 통해 무장독립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이는 방현석 작가의 말을 이진 작가가 인용한 것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만주에서 길을 묻다》 속에 잘 녹아있다.

 

글쓴이의 경우는 ‘범도루트’라는 만주 길잡이 답사 경로가 생기기 이전에 만주지역을 다녔던 관계로 체계적이지 못했을뿐더러 고생한 만큼의 성과도 얻지 못했다. 옥수수밭으로 변한 만주 독립운동 현장을 헤매느라 고생한 것에 견주면 요즘은 훌륭한 길잡이 선생의 도움으로 훨씬 짜임새 있게 답사를 다닐 수 있다. 행운이다.

 

"이번 범도루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대학교수, 백두대간을 그려온 저명한 목판화가, 고 문익환 목사님 책을 전담했던 출판가, 영화 ’부러진 화살‘의 변호사, 전직 대기업 임원, 저명한 소설가와 작가 지망생, 시인, 문학평론가, 노동운동가, 전ㆍ현직 교사, 마을 활동가, 치과의사, 영상의학 전문의, 공무원 등등"이라고 이진 작가는 밝혔다. 다양한 층에서 함께 ‘만주항일무장투쟁지’를 답사하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었을 것이다.

 

“잊힌 영웅들의 발자취를 따라 만주벌판을 걷고, 광활한 대지에 새겨진 피의 역사를 오늘과 내일로 이어가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이진 작가의 이 책 《만주에서 길을 묻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작가 이진>은?

1965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80년, 중학교 3학년 시절 광주민중항쟁을 직접 겪으며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이후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전남대학교에 다녔다. 늦깎이로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재)5·18기념재단을 시작으로,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 정책연구위원, 민주당 중앙당 국장, 전남도당ㆍ광주시당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광주광역시의회 운영수석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거대 담론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중시하며, 이제는 나라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평범한 가장이자 대한민국이 더 나은 민주제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자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