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조임금이 어진을 그리라 했지만 조영석은 거절합니다. 신하와 임금 사이에는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절대군주의 시절 감히 임금의 명을 거절하다니 더구나 조영석은 그 13년 전에도 세조 영정을 모사하라는 명을 받지 않아 파직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중신들은 조영석의 죄를 물으라 했지만 영조는 더는 말하지 못하게 했으며, 그의 선비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다음 달 벼슬을 정5품으로 올려주었습니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조영석도 대단하지만 영조는 참 슬기로운 임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