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선인들의 말이 묵향처럼 퍼지는 날
아낙들은 눅눅한 옷을 볕에 말리고
선비는 그늘에서 책을 말리는 처서
위는 김영수 시인의 <처서> 일부분입니다. 내일은 열넷째 절기 처서(處暑)입니다. 말뜻으로 본다면 멈출 '처(處)'에 더울 '서(暑)'를 써서 '더위가 그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삐뚤어진다"라는 말이 있어서 이제 푸른 가을하늘이 저 멀리 다가올 듯합니다.
이 처서 때의 세시풍속 가운데 가장 큰 일은 포쇄(曝曬)라고 해서 뭔가를 바람이나 햇볕에 말리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는 사고(史庫)에 포쇄별관이란 벼슬아치를 보내서 눅눅해지기 쉬운 왕조실록을 말리도록 했습니다. 또한 선비들 역시 여름철 동안 눅눅해진 책을 말리고, 부녀자들은 옷장 속의 옷과 이불을 말립니다. 책의 경우 포쇄하는 방법은 우선 거풍(擧風) 곧 바람을 쐬고 아직 남은 땡볕으로 포쇄(曝)를 하지요. 때에 따라서는 음건(陰乾) 곧 그늘에 말리기도 하는데 “건들 칠월 어정 팔월”이라는 말처럼 잠시 한가한 처서 때 농촌에서는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수채화처럼 곱기도 합니다.

그런데 처서가 됐는데도 아직 불볕더위는 기승을 부리고 열대야에 사람들은 잠을 못 이룹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볕더위에 고생하면서도 우리는 막바지 익어가는 곡식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무렵에 비가 계속해서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고 하지요.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라고 하는데, ‘처서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라고 하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에 든 쌀이 줄어든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맑은 바람과 왕성한 햇살을 받아야만 나락이 제대로 익는데, 비가 내리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고 결국 제대로 자라지 못해 썩기 때문입니다. 땡볕에 익어가는 곡식을 생각하고 불볕더위의 극성에도 모기입은 삐뚤어짐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