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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토박이말 이야기

[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구름안개

구름같은 안개?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비가 온 뒤 갠 아침이나, 뫼허리를 굽이도는 고갯길에서 문득 온 누리가 잿빛과 흰빛으로 가득 차 발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안개가 꼈다’고 말하지만, 이럴 때 꼭 들어맞는 아름다운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구름안개’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구름안개’를 ‘구름처럼 보이는 안개’라고 풀이합니다. ‘구름’과 ‘안개’, 두 낱말이 만나 그 뜻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과학 배움책을 들여다보면 ‘구름’과 ‘안개’는 만들어지는 자리가 다르다고 일러줍니다. 아주 작은 물방울이 하늘 높이 떠서 뭉치면 ‘구름’이 되고, 땅 가까운 곳에서 뭉치면 ‘안개’가 된다는 것이지요. 떠 있는 높낮이로 둘을 가르는 셈입니다.

 

 

그런데 ‘구름안개’는 바로 그 둘의 다른 점을 슬그머니 지우는 재미난 말입니다. 하늘 높이 있어야 할 구름이 땅으로 내려와 안개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땅에 머물러야 할 안개가 뭉게뭉게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한 모습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구름안개’ 속에서는 하늘과 땅의 가름이 사라집니다.

 

말집(사전)에 실린 보기는 뫼에 오를 때의 일을 이야기합니다.

 

비가 내리고 구름안개 때문에 시야는 좋지 않지만 무사히 정상에 도착했다.

 

이처럼 뫼에 오르는 이들은 구름안개를 만날 때가 많습니다. 뫼 아래에서는 안개 속을 걸었지만, 오르다 보면 어느새 구름 속으로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안개가 구름이 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지요.

 

구름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은 적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 둘레에서도 ‘구름안개’가 피어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짙은 구름안개가 몽실몽실 피어올라 다리도 집도 모두 숨겨버렸다.

자욱한 구름안개 때문에 차들이 저마다 불을 켜고 거북이걸음을 했다.

구름안개에 잠긴 숲길을 걸으니, 마치 딴 세상에 들어온 듯 마음이 더없이 고요해졌다.

 

이처럼 ‘구름안개’는 우리 둘레의 바람빛(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말일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이들에게도 남다른 느낌을 주는 말인가 봅니다. 몇몇 말꽃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는 이 말이 더욱 깊은 뜻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김영랑 님의 가락글(시) 「거문고」에서는 소리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빚어내는 데 이 말을 아름답게 쓰고 있습니다.

검은 빛 거문고는 둥근 소리 못 내어도 / 차가운 손가락에 구름안개 피어나다

 

또한 최인훈 님의 소설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처한 막막한 마음을 드러내는 데 ‘구름안개’를 썼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들이 눈을 떴을 때, 배는, 잿빛 구름안개에 싸여 있었다.

 

언젠가 우리에게 구름안개가 찾아오거든, 그 모습에 마음까지 젖게 두지만 마세요. 말꽃지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그 속에 숨은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늘이 땅을 포근히 안아주러 온 날이라고, 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가만히 읊조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