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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장벽을 세우면 자신이 갇힌다

그 장벽 안에서 미국 경제는 무너질 것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32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달 초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있는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300여 명의 우리 근로자들이 미국 출입국 단속반의 무차별 단속을 당해 비인권적,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고생하다가 일단 우리나라로 돌아온 사건은 여러모로 지금까지 우리가 살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지구상에 있음을 각성하게 하였다.

 

사건의 경위야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을 건설한다고 미국의 국경을 사실상 틀어막고, 미국 안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들을 마구잡이로 단속해 실적을 올리려 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지만 이제 세계의 질서를 이끌어가던 미국이 이상이나 신념, 관행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익 앞에 형편없이 무너져 내린 것을 세계가 알게 되었고, 이로써 그동안 알게 모르게 미국의 도덕과 가치를 존중해온 많은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또한 관세를 몇 10%씩 마구 올려 미국정부가 그 관세 수익으로 미국민들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하니 다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지켜보며 일부 환영하는 국민이 있는 것 같은데 그 관세도 제멋대로, 자기 기분에 따라 관세를 매겼다가 연기하고 취소하고 깎아주고 하는 행태가 이어지면서 정작 미국인들에게도 서서히 피해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 되는 것 같다.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고 있고 싸기로 유명한 농산물 가격이 크게 급등하자 미국의 각 가정에서 땅을 갈아 직접 채소를 길러 먹는다는 소식도 들린다.

 

 

문제는, 우리가 보는 대로 트럼프가 미국 둘레에 장벽을 쌓고 있는데 있다. 그 장벽은 크게 미국-멕시코 국경에 설치된 장벽과 출입국자, 미국 체재자들에 대한 장벽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미국 안팎의 관세ㆍ비관세 장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불법 이민과 마약 유입을 막겠다며 국경 장벽 건설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실제로 2017년 취임 뒤 대규모 장벽 설치와 함께 관세 장벽, 비관세 장벽 강화 정책도 추진했고 곧 재선 이후에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9m 높이의 강철 기둥을 설치하여 현재 전체 국경 3,145km의 22%에 이르는 700km에 장벽이 설치되어 있다.

 

트럼프는 한술 더 떠서 지난달에는 이러한 메시코 국경의 철제 장벽에다가 “불법 입국자가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멕시코 국경지대의 철제 장벽을 검은색 페인트로 칠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태양열을 잘 흡수하는 검은색으로 장벽에 칠해놓으면 불법 이민자들이 뜨겁게 달궈진 장벽에 기어오르려는 시도조차 못 할 것이라는 까닭에서다. 불법 이민자들이 9미터 높이의 장벽을 어떻게 넘으려 할 것인지는 묻지 않아도 힘들 것인데 여기에 다시 검은 페인트를 칠하는 비용까지를 더 쓴다는 것이 아닌가? 집권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인 의회는 국경장벽 건설과 유지 관리를 위해 470억 달러(약 65조 8,000억 원)의 예산안을 최근 승인했다고 한다.

 

 

지난주에는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비자 수수료를 1인당 연간 10만 달러(약 1억 4,000만 원)로 대폭 증액한다는 포고문이 나왔다. H-1B 비자는 과학ㆍ기술ㆍ공학ㆍ수학(STEM) 분야를 포함한 전문 직종에 적용되는 비자로 미국이 세계의 두뇌를 모아서 새로운 문명을 이루는 원동력인데 그동안 추첨 등록비 215달러와 청원서 제출비 780달러 등 단순 신청 비용은 약 1,000달러대였는데 이제 해마다 B 비자 수수료를 1년에 10만 달러를 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100배나 수수료를 큰 폭으로 올려 외국인의 입국 문턱을 높이고 미국 젊은이들을 일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반발이 있자 해마다 받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물러서기는 했지만, 곳곳에 장벽을 세우려 한다.

 

여기에 미국 비자와 영주권 등의 심사 과정에서 신청자의 소셜미디어(SNS)를 검증해 반(反)미국 성향이 있는지를 점검하겠다는 것도 있다. 트럼프 정권에 대한 미국 언론의 비판도 막겠다는 내용도 발표되었다. 외국인들에게는 비자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하고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이나 국방성 출입을 막겠다고 한다. 이제는 미국을 비판할 말을 미국이나 미국 밖에서도 해서는 하지 말라고 미국이 강요하는 세상이 되는 것 같다. 역사상 이렇게 비싼 수수료를 받는 일, 남의 나라에서 한 발언이나 생각까지를 검열하는 이런 일이 언론을 통한 자유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미국이란 나라에서 시행되는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랜드를 점령하겠다는 등,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바다를 지금까지 불러오는 '멕시코만(灣)'이 아니라 '미국만'으로 불러야 한다는 등 호언해서 세계인들을 경악게 한 바 있는데, 이런 가운데 멕시코 장벽을 더욱 강화하는 정책에 대해 최근 이를 호쾌하게 반박한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1년 전 선거에서 멕시코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장벽을 세우려 했지만 기억하라. 그 장벽의 반대편에는 70억 인구가 서 있다. 그들은 아이폰을 내려놓고 삼성이나 화웨이를 집어 들 수 있다. 포드와 쉐보레 대신 도요타, 기아, 혼다를 탈 수 있다. 디즈니 대신 라틴아메리카 영화를 볼 수 있고, 나이키 대신 멕시코의 파남(Panam) 신발을 신을 수 있다.

 

이 70억 소비자가 미국 제품 구매를 멈춘다면, 당신이 세운 그 장벽 안에서 미국 경제는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당신 스스로 와서 ‘제발 이 장벽을 허물어 달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 그러나 당신이 장벽을 원했으니, 이제 장벽을 얻게 될 뿐이다."​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의 관세압박에 쉽사리 굴복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 트럼프가 "용감하다"라고 칭찬도 했다고 하는데, 멕시코로서는 바로 인접한 미국의 직접적인 압박에 힘들어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사정을 동정하는 만화도 멕시코 언론에 등장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휴전선 일대에 높은 장벽을 쌓고 있는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 북한이 장벽을 쌓는 이유는 남북 간의 경제격차가 심해서 남쪽의 우리 쪽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 마음 자체를 봉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내부자들의 탈출을 막으려는 것이어서 미국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하겠다. 다만 장벽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역사의 가르침이 있다.

 

장벽이라고 하면 현대사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생각나고, 역사적으로는 아득한 엣날 중국이 쌓은 만리장성이 생각난다. 그런데 두 장벽 모두 외부로부터의 적을 지켜내지 못했고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곧 장벽은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자신들이 그 안에 갇혀서 숨이 막힌다는 사실이다. 베를린 장벽이 그랬고 중국의 만리장성도 외부 민족의 침입 전에 내부에서부터 무너졌다.

 

장벽이라는 것은 바람을 막는 것이어서 그 속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갇히게 됨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외국의 침략을 자초한 역사도 그러한 하나의 사례다. 현대에 와서도 철의 장막, 죽의 장막 등등 장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장막을 친 옛 공산권의 나라들이 다 사회와 경제발전에 뒤쳐져 스스로 장막을 없앤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장벽은 곧 쇄국이기에 이것이야말로 나라의 발전을 멈추고 국민들을 힘들에 하는 정책이라고 하겠다.

 

그러기에 "당신이 세운 그 장벽 안에서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당신 스스로 와서 ‘제발 이 장벽을 허물어 달라’고 말할 때가 올 것이다"라는 멕시코 대통령의 발언이 반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나라의 장벽을 쌓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 주고 있다. 미국이 과거 외국과의 담을 쌓다가 스스로 포기한 역사가 이미 있음에랴. 그리고 장벽은 꼭 외국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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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