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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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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말해주는 것

떨어지는 은행잎은 죽음이 아니라 탄생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제 곧 거리마다 가로수 밑으로 노란 색종이들이 눈처럼 날릴 때가 온다. 이미 황금설이 내린 곳도 있으리다. 그럴 때 우리들은 이효석이 그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에 남긴 이 명언을 생각한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한여름 들이나 산에 가면 온통 칡넝쿨이 우거지고 그 줄기마다 칡의 잎들이 무성해서, 마치 이 세상이 칡잎으로 뒤덮이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칡 잎은 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 이제는 노란 은행잎이 세상을 뒤덮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은행잎에 대한 시인들의 찬사와 영탄, 한탄이 은행잎만큼이나 많은 것을 접하게 된다.​ 우리 한국의 가을은 이제 확실히 은행잎이 분위기를 잡아준다. 지금도 우리는 길에 쌓인 은행들을 밟으며 이 은행잎들이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버릴 수가 없는데, 이런 가로수가 없던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나? 생육신으로 유명한 김시습(金時習)도 이런 시를 남긴다;​ 落葉不可掃 떨어지는 잎은 쓰는 것이 아니라오 偏宜淸夜聞 맑은 밤 그 소리 듣기 좋나니 風來聲慽慽 바람이 불면 그 소리 우수수하고  

명철보신(明哲保身)이 이렇게 되어서야...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박물관에 기증한 2만1600여 점의 귀중한 문화재 가운데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이 지난 7월21일부터 9월2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일반에 공개되자 관람객들의 인기를 가장 끈 작품이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인왕제색도>였다고 한다. 비가 개인 뒤 인왕산의 풍경이다. 당시 인왕산에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집을 짓고 살았다. ​ 우리나라 역대 군주 중에 최고는 역시 세종대왕일 것이다. 대왕의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정치를 잘 한 것은 그만큼 여러 면에서 능력이 출중해서였을 것인데, 그런 대왕의 아들들도 다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맏이인 문종과 동생인 수양대군, 안평대군이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효성이 지극했지만 나라를 이끌 군주로서 가장 중요한 건강이 좋지 않아 결국엔 그 아들이 삼촌에게 화를 입는 역사로 이어졌지만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수양대군과 그 동생 안평대군은 모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무예도 익히고 사람들을 잘 사귀고 해서 당대에 두

생일에 이 노래로 축하하면 어떨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 올해 10월 13일은 저의 생일입니다. 원래 음력인데 양력으로 환산하니 13일이지요. 몇 번째인가 하는 것은, 이제 6학년을 거의 졸업하는 셈이어서, 의미가 없는 것 같고요, 주중에 낀 생일을 미리 한다고 해 아들 손자들이 주말에 미리 축하를 해주어서 생일상을 잘 받았음을 기쁘게 알려드립니다. 그런데 올해 생일상이 예년과 다른 점은 생일 축하의 노래를 기존의 미국 노래인 "해피 버쓰데이 투 유"를 우리말로 바꾸어 부른 노래가 아니라 새로 이 노래로 축하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사와 악보가 있습니다. 엇, 작사자가 이동식이군요. 바로 저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제가 작사한 것이지요. 긴 긴 시간을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들은 집안 식구들의 생일, 혹은 생신을 축하하는 상을 차려 올릴 때에 많이 드시라며 말로 축하의 말을 곁들이지만 노래로 축하하는 경우는 민간에서는 별로 없었지요. 다만 왕실에서는 축하음악과 노래를 불러 올렸고, 또 몇몇 분들이 부모님의 생신에 축하노래를 불러올리도록 한 경우는 있었지만 따로 축하노래를 불러올리지는 않았는데, 해방 이후 미국식 생활습속이 급속히 들어와 생일날 케이크를 놓고 거기에 촛

길 옆의 아름다운 부활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릇 생명이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것을 부활이라고 부를 것이다. 생명이 아닌 무생물의 경우는 어떤가? 돌이나 나무나 금속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 마치 죽은 것처럼 묻혀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면 그것도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돌이나 금속이 어떤 형태를 띄고 있다가 그것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그것은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것은 분명 부활일 터이다. 북한산 둘레길 은평구간에 부활의 좋은 소식이 있다. 필자가 아침마다 오르는 등산로겸 산책길로 북한산 둘레길 제8구간 구름정원길 중에는 은평뉴타운 4단지 뒷편쪽 길이 있다. 아파트 뒷쪽으로 난 길이어서 그리 높지 않은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곳인데 아파트단지에서 올라가는 가까운 곳 비탈에서 얼마 전부터 엎드려 있는 석상이 하나 있어서 그곳을 지나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었다. 그 전에는 땅 속에 묻혀있었지만 길 옆 살짝 비껴난 곳이어서 눈에 띄지 않다가 올 여름 비가 계속 온 다음에 노출되어, 머리가 밑으로 향해 엎어져 있었는데 지난 목요일 아침에 보니 어떤 남자 분이 삽을 들고 옆 흙을 파내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두고만 볼

산에 오르는 까닭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6]

[우리문화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 ​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대해 1924년에 에베레스트를 도전한 등산가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가 한 이 대답은 고금의 어록으로 기억되지만 사실 등산이라는 것이 모든 이들이 다 좋아하고 다 올라가고 싶은 그런 운동, 혹은 취미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이 매력을 주지 않는다. 또 산에 올라가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모두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등산을 하다가 자신의 삶을 잃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등산이란 어리석은 장난이며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런 식으로 위험에 빠뜨릴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이란 멀리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천하고 세상 동떨어진 짓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 우리나라 사람들도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등산을 한 후에 유산기(遊山記)를 많이 남겼지만 우리의 산이 못올라갈 만큼 험한 산이 없는 관계로 전문적인 등산가는 존재하지 않은 것 같고 다만 산을 오르는 것을 심신을 연마하는 차원에서 보고 즐긴 분들은 많다. 일찌기 청량산에 들어가 산을 유람하고 거기서 공부를 한 퇴계 이황은

'그대 도산서원에 간다면'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5]

[우리문화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벌써 2년도 더 지난 2019년 7월에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됨으로서 한국의 서원들은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기른다는 유교국가 조선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역사성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지만, 학문 연구와 교육기관으로서의 서원이 독자성을 가지고 정착, 보급된 것은 퇴계 이황(李滉)에 의해서이다. 풍기군수를 맡고 있던 퇴계는 1549년에 백운동서원에 대해 사액과 국가의 지원을 받아냄으로서 서원이 나라에 의해 공인화되었고 그 뒤를 이어 서원들이 각지에서 건립되게 된다. ​ 그러기에 우리의 서원문화를 일으킨 퇴계 이황(李滉, 1501 ~ 1570)의 학덕을 기리는 도산서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원이다. 그런데 이 서원은 퇴계가 별세한 지 4년 후인 선조 7년에 그의 문인과 유림이 세운 것이고, 원래는 퇴계가 작은 집을 지어 유생을 가르치며 학덕을 쌓던 도산서당이란 건물이 있었을 뿐이었다. 여기에 서원으로서의

밝은 달이 있는 까닭

달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높고 낮음이 없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旣望, 열엿새 날)에 소자(蘇子, 소동파)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는데 물결은 크게 일지는 않는다. 술잔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 ,깊고 고요함)을 노래하네.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네.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는데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마치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네..." 이렇게 시작하는 적벽부는 47살의 소동파가 송나라 원풍 5년(1082) 한가위 한 달 전인 음력 7월 16일(旣望) 달 밝은 밤에 삼국지 가장 큰 전투인 적벽대전의 무대였던 적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며 읊은 부(賦) 형식의 명문장이다. 88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적벽대전으로 수많은 장정이 목숨을 잃었고 그때의 큰 싸움의 주인공인 조조와 주유, 공명 등의 위인들은 영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