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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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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공원 탄생에 일조한 추억

서울을 푸르게 만든 시장 조순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참으로 오랜만에 여의도 공원을 갔다. ​ 공원 곳곳에 길이 나고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다. 내 생각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이 공원에 대해서 남다른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평생 근무한 KBS가 여의도 공원 남서쪽에 붙어있어 거기에 관련된 추억이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사연이다. 넓이 23만 제곱미터, 예전 평이란 개념으로 7만여 평이나 되는 이 공원은 예전에는 벌판이었고 거기엔 공항이 있었단다. 필자도 그 공항을 본 적이 없다. 공항이 있을 정도로 동서남북이 뚫리는 거대한 벌판이었다가 70년대 초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면서 그 넓은 벌판이 아스팔트로 포장돼 5.16 광장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거기서 국군의 날에는 국군 사열이 벌어졌다. 1977년 봄 필자가 KBS에 들어간 이후에도 그곳은 넓은 광장이었다. 그곳에서 80년대에 국풍이 열렸고 이산가족 만남도 있었고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어졌다. 평소에는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끝까지 걷기도 힘들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그것이 1997년에 갑자기 공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95년 7월 1일 조순 전 경제

5월에 또 하나의 소중한 날, ‘부부의 날’

한여름 더위를 잘 참으면 다시 가을이 오는 법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5월은 신록의 달이란 표현 그대로 모든 것이 파릇파릇, 새 생명들이 보여주는 잔치 속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우리들이 한창 자라나는 삶의 과정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되새기는 날들이 이어지는 바람에 한 달을 정신 없이 보낸 것 같다. 올해는 또 그 중간에 부처님 오신 날이 있어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모두가 우리들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곧이어 달력에 빨간 표시가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보내지만 중요한 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부부의 날이다. 부부의 날을 아시냐고 물으면 글쎄 얼마나 안다고 답할까 잘 모르겠지만 날짜로는 21일이다. 이 부부의 날은 한국에만 있는 날이다.​ 1995년에 창원에 사는 권재도 목사 부부가 처음 제안해서 2007년에 국가기념일이 됐으니 올해로 14회를 넘겼다. 왜 21일인가. 둘(2)이 하나(1) 돼 잘살자는 뜻이라고 한다. 부부의 날은 세계에 유례가 없고 우리나라만의 국가적인 기념일이 되었다는 데서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부부의 금실과 가정의 화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금실이라는 말은 ‘시경(詩經)’의 첫머리에 나오는 금슬(琴瑟)에서 유래된 말로서, 일

국립중앙박물관의 새 얼굴에 거는 기대

반가사유상 국보 83ㆍ78호, 국립중앙박물관 대표문화재 된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경복궁 귀퉁이의 민속박물관 자리에 있다가 헐린 중앙청에 있다가 고궁박물관 자리로 옮기는 진통 끝에 2005년에야 현재 자리에 크고 새롭게 지어지는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다. 이 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을 들어서면 큰 홀 한가운데에 대리석으로 된 탑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바로 경천사 10층 석탑이다. 국보 제86호인 이 경천사 십층석탑은 높이 약 13.5m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로, 석탑 전체에 불, 보살, 사천왕, 나한, 그리고 불교 설화적인 내용이 층층이 가득 조각되어 있어 무척 아름답다. 그러기에 전시관에 들어서면, 홀 중앙에서 천정까지 치솟는 위용으로 해서 중앙박물관의 얼굴인 것처럼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이 탑은 고려말기 원나라에 기울어져 있던 고려 귀족들이 발원했고, 탑의 외형은 우리나라에 있는 기존의 간결한 석탑과는 달리 원대에 유행한 라마교의 요소가 많으며, 탑을 만든 사람도 원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어서, 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문화재로는 인식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올 10월에는 전혀 다른 문화재를 만나게 된다. 바로 우리 조상의 뛰어난 기술과 예술관, 심미안을 보여주는 뛰어난

자식을 보면 부모가 보이지요(5월 5일에)

현생의 자식은 전생의 부모?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내 나이 어느덧 올해 47살 아이를 낳아 이제야 부모가 되었구나 기르고 가르치는 건 진실로 내 몫이나 수명과 자질은 너에게 달려있다.​ 내가 만일 70살까지 산다면 25세 된 내 아들 모습 보겠구나 나는 네가 대현이 되기를 바란다만 하늘의 뜻이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다.​ 我今行年四十七 生男方始爲人父 鞠育敎誨誠在我 壽夭賢愚繫於汝 我若壽命七十歲 眼見吾兒二十五 我欲願汝成大賢 未知天意肯從否 ... 소옹(邵雍), 《소씨문견록(邵氏聞見錄)》​ 소옹(邵雍, 1011~1077)은 중국 송나라 때의 대유학자이자 정치가, 문장가였다. 그의 호를 따서 흔히 소강절(邵康節)로 더 유명한데, 특히 동서고금을 통틀어 주역(周易)에 완전히 달통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었다고 알려져 그에 따른 일화도 많다. 소강절은 가난 속에서 공부에 심취하여 45살의 늦은 나이에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제자의 누이와 혼인하여 47살에 첫 아이 백온(伯溫)을 낳았다. 늦게 본 자식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시에 절절히 나타난다. 신규야 부르면, 코부터 발름발름 대답하지요.​ 신규야 부르면, 눈부터 생글생

토인비가 칭찬한 한국의 효(孝)란?

입신양명에 매몰된 유교적 가치관이 한국을 병들게 해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여름에는 살인적인 더위와 홍수로, 겨울은 혹한으로 시련과 절망의 강이었지만 중국인들은 이 시련에 맞서 적응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황하문명을 이룩했다. 로마인들은 풀 한 포기 없는 자갈밭과 역병이 들끓는 황야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1934년에 저술을 시작해 27년 만에 12권의 책으로 나온 아놀드 토인비의 위대한 저작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는 이처럼 한 나라나 민족을 넘어서서 한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하는 원동력으로 그들이 처하게 되는 도전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설명을 함으로써 역사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아쉬운 것은, 비록 당시 대작을 쓰기 시작할 때 우리가 일본의 통치 아래 있었고 일본은 강국으로서 그 힘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이었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문명에서 분명 한국인들의 역할과 긴 문명을 이어온 특별한 힘을 토인비가 주목할 수 있었을 것인데도 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이었다. 토인비는 1954년에 이 책을 완성한 이후 내용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195

'다다익선'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진입로 문제가 끼친 영향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달 전쯤인 지난달 중순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울올림픽 30돌을 기리는 작은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을 다시 가게 되었다. 예전에 KBS기자로 있을 때는 회사의 취재차량을 타고 갔고, 퇴직 후에는 어쩌다 가게 되면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합정동 로터리에서 타고 가곤 했는데, 이날은 코로나 사태로 서울 시내에서 갈 수 있는 셔틀버스는 운영을 중지해, 과천 서울대공원역 4번 출구에서 미술관으로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다. 새로 전시회가 열리지만, 이날도 코로나 여파로 손님은 나를 포함해 둘 뿐, 작은 승합차를 타고 구불구불 진입로를 따라 돌아 미술관을 올라가면서 나의 머리는 35년 전인 1986년 8월로 돌아가고 있었다. 1986년 8월 25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층 연회장, 새로 완공된 현대미술관의 위용을 보며 내심 흐뭇해하던 전두환 대통령과 이원홍 문화공보부 장관, 그리고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한 미술계 원로, 현역들이 줄줄이 모여 서 있었다. 시설을 둘러보고 이같이 좋은 미술관을 갖춘 데 대한 치하의 말을 기대하고 있던 전두환 대통령, 몇 마디 치하의 말이 미

윤여정의 유머가 세계를 넘다

더듬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고도의 수사법을 담은 수상소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윤여정씨가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이 단연 화제다. 도하 신문들이 인용하는 그 소감은 이랬다. 신문 ㄱ “모든 상이 의미있지만, 이 상은 고상한 체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매우 행복하네요.” 신문 ㄴ “이번 시상식이 특별히 고마운 이유는 고상한 체하는 영국 사람들이 나를 좋은 배우로 알아봐 줬기 때문입니다” 방송 ㄷ "모든 상이 의미가 있죠. 하지만 이번 상은 영국인들, 그러니까 고상한 척하는 걸로 유명한 당신들로부터 받은 상이어서 의미가 크네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이 상을 '고상한 체(척)'하는 영국인들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는 소감인 것이다. 그런데 맨 처음 수상소감을 전한 어느 언론은 '고상한 영국인들로부터'라고 해서 고상한 체하는 영국인이 아니라 고상한 영국인이라고 한 것 같은데 나중에는 다들 '고상한 체하는‘으로 바뀌어 전하고 있다. 우리 언론만을 보고 도대체 '고상한 체'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고 윤여정씨의 영어소감을 확인해보니 이렇게 이야기했다.​ "Thank you so much for this award. Every

참인간 ‘아사카와 다쿠미’를 생각하다

세상을 뜬지 꼭 90주년이 되는 날,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주 금요일은 4월 2일, 이날 망우리 한 묘역에 정장차림의 시민 50여 명이 모여있었다. 아사카와 다쿠미(淺川 巧)라는 한 일본인이 세상을 뜬지 꼭 90주년이 되는 날, 그를 알고 사랑하고 기념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의 묘역을 찾은 것이다. 겨우 40년을 살다가 이 땅에서 간 이 사람은, 굳이 일본인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얽어매어 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그의 삶을 추적해 보고 그 삶의 의미를 되살려보고 있기에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1891년생인 다쿠미는 먼저 와 있던 형 노리다카의 권유로 1914년에 한반도로 건너와 형과 친구인 야나기 무네요시 등과 함께 도자기나 소반 같은 한국의 공예를 연구하고 일본 치하에서 사라질 운명에 있는 이들 예술을 구하고 지키기 위해 조선민족작물관을 만드는 등 무진 애를 썼으며, 임업에도 정통해서 우리나라 전역의 녹화사업에 공헌했으나 과로로 인해 1931년 4월 2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짧은 문장으로 그를 다 알릴 수는 없지만 1920년대 이 땅에 와서 살면서 땅과 사람들을 사랑했고 이 땅의 헐벗은 산야에 심을 나무를 가꾸었고 미처 우리가 알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