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길동이 절을 하고 엎드려 아뢰었다. ‘소인이 대감의 정기를 입어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고, 육축(가축)도 부모의 은혜를 아는데, 소인은 어찌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옵니까?’” 이는 소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호부호형(呼父呼兄) 못 하는 서얼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는 대목입니다. 서얼(庶孼)은 조선 시대 양반 가문에서 정실부인이 아닌 첩의 몸에서 태어난 자녀를 통칭하는 신분 계급인데 그 가운데서도 양인(일반 평민) 신분의 첩이 낳은 자식은 서자(庶子)고, 천인(노비 등) 신분의 첩이 낳은 자식 얼자(孽子)라고 했지요. 서얼은 태종 때 도입된 서얼금고법과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라 문과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의 《연산군일기》 26권, 연산 3년(1497년) 8월 5일의 기록처럼 서얼이라도 의료 업무를 맡은 관청에 들어가려는 과거는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의공(醫工)은 천해서 오랫동안 선비에 끼이지 못했습니다. 어찌 문ㆍ·무 양과(兩科)와 견줘서 흠이 있는 자를 모두 취택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신 등의 생각엔 신묘년 《대전(大典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울산박물관 소장 「고래뼈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고래뼈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은 2010년 발굴조사가 진행된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고래의 꼬리뼈와 어깨뼈 일부에 해당하는 부위에 각각 1개씩 박힌 상태로 발견되었다. 2점의 작살촉은 사슴뿔을 뾰족하게 갈아 만들었는데, 사슴뿔은 강도가 높아 선사시대 사냥도구 재료로 선호되었다. 어로 활동은 수렵과 더불어 한반도 신석기 문화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생업 양상 가운데 하나로, 「고래뼈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은 이 시기 한반도인의 생활문화와 생업기술, 도구 제작 기술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작살촉이 고래뼈에 박힌 상태로 발견되어 신석기시대 도구의 제작 목적과 사용 흔적, 도구와 사냥 대상 간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이러한 사례는 나라 안팎으로도 매우 희소하여 역사적ㆍ학술적 값어치가 크다. 아울러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울산광역시 소재 「반구천의 암각화」에도 배와 작살, 그물 등을 사용한 고래잡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고래뼈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은 이와 같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본격적인 여름을 맞아 전통사회 사람들이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쉬었던 다양한 방식을 소개한다. 오늘날과 같은 연차 휴가는 아니었지만, 관료에게는 제도화된 휴일과 휴가가 있었고, 선비는 독서와 교유로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농민들은 농사일이 한고비를 넘으면 호미를 씻어 걸어 두고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쉬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쇄미록(瑣尾錄)》과 《해주일록(海洲日錄)》에는 무더위와 고된 노동 속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재충전했던 옛사람들의 모습이 남아 있다. 관료에게도 휴일과 휴가가 있었다 신라시대에도 관인의 휴일과 휴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에는 더욱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됐다. 고려의 관인들은 매월 1일ㆍ8일ㆍ15일ㆍ23일, 대략 7일마다 하루씩 쉬는 ‘칠가(七暇)’를 누렸다. 자신이 병들거나 부모를 간병할 때, 멀리서 사는 부모를 찾아뵙거나 부모의 묘를 돌볼 때에도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혼례ㆍ상례ㆍ제사ㆍ질병ㆍ부모 봉양 등을 위한 ‘급가(給暇)’가 운영됐다. 세종은 젊고 재능 있는 문관들이 공무에서 벗어나 독서에 전념하도록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