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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제는 '만민정음'입니다

대한민국, 우린 빛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32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국인 여성이 만들고 부른 노래가 빌보드 핫100 1위,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1위 등 글로벌 차트를 석권하면서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애니메이션(만화)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그 OST인 ‘골든’이란 노래 가사는 영어로 이렇게 부른다.

 

 

“I was a ghost, I was alone, hah” (난 유령이었어, 혼자였지)

“Given the throne, I didn’t know how to believe” (왕관을 받고도 믿을 수 없었지)

“I lived two lives, tried to play both sides” (두 개의 삶을 살며, 다 잘 해내려 했지)

“But I couldn’t find my own place” (하지만 내 자리를 찾을 수 없었어)

“Called a problem child ‘cause I got too wild” (너무 거칠다고 문제아라 불렸지만)

“But now that’s how I’m getting paid, endlessly on stage” (이젠 그게 내가 무대에서 성공하는 방식이 됐어)

“I’m done hidin’, now I’m shinin’ like I’m born to be” (이제 숨지 않을 거야, 난 태생대로 빛나고 있잖아!)

“We’re goin’ up, up, up, it’s our moment” (우린 계속 올라가, 이제 우리의 시간이니까)

“Gonna be, gonna be golden” (우리는 황금처럼 빛날 거야)

 

 

여기까지는 영어로 노래하고는 갑자기 한국말이 튀어나온다.

 

“영원히 깨질 수 없는”

“밝게 빛나는 우린”

“우린 빛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골든’이란 제목의 이 노래는 물론 노래를 작사, 작곡하고 직접 부르기까지 한 이재처럼 K-POP 무대에서 성공하려고 갖은 고생을 하다가 드디어는 자신의 길을 찾아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앞줄 영어로 부르다가 느닷없이 우리 말이 후렴구가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자라나는 청소년에다 어른들까지 따라 부르고 춤도 추고 하느라 지구 전체가 무슨 난리가 난 것 같은 폭발적인 인기의 이 애니메이션에서 버젓이 한국어 가사가 등장하니 이 노래를 보고 듣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느 틈에 한국말을 접하고 외우고 따라 하게 된다. 이들은 한국어와 함께 한글도 함께 공부하게 되니 이들을 통해 우리 말과 우리 글자가 세계에 더 널리 퍼진다. 우리 말과 한글의 세계 전도사인 것이다.

 

이렇게 음악과 영상을 통해 우리 말을 접하고 우리 한글을 배우는 현상은 어제오늘이 아니라 K-POP이 전 세계를 흔들면서부터 자연스레 따라오는 즐거운 부산물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말이 부슨 말인가? 바로 ‘돌민정음’이다.

 

 

‘돌민정음’. 아이돌(Idol)을 통해 세계에 퍼지는 우리 한글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외국인들은 훈민정음이란 개념을 잘 모를 것이기에 ‘돌민정음’이란 말은 우리말과 글이 이들 K-POP 스타들을 통해 세계에 퍼지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 우리 누리꾼들이 만들어낸 용어일 것이지만 “아이돌이 가르쳐주는 훈민정음”이란 뜻의 돌민정음은 은근한 자부심과 함께 정겹게 느껴진다. ​

 

‘캐데헌’이란 애니메이션에는 캐나다에 사는 한국 교민인 메기 강 감독이 의도한 대로 등장하는 인물, 장소, 문화가 온통 한국적이다. 김밥과 컵라면, 수저를 받치는 냅킨이 나온다. 언어는 제작사의 모국어인 영어인데 그걸 둘러싼 정서와 배경은 영락없는 한국의 것들이다. 케이팝의 위력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으니 이런 것들이 미국의 투자를 받아 애니메이션 영화로 옮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한국어와 한글이 나오니 그 효과는 다른 어떤 선전수단보다도 강력하다, 무엇보다 매기 강 스스로가 에이치오티(HOT), 서태지와 아이들, 원타임 같은 1세대 케이팝 그룹들을 좋아한 엑스세대였고 곡을 만들고 부른 이재는 자신이 바로 그 노래의 주인공이었기에 이런 것이 그대로 살아날 수 있었다고 보인다.

 

 

 

K-POP 스타들이 노래를 만들어 세계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 언어로 발음하면 그 느낌이나 맛, 어감이 잘 살지 않는 한국어가 발음 그대로 영어로 쓰이고 읽힌다. ‘오빠(Oppa)’, ‘언니(Unnie)’, ‘막내(Maknae)’ 등이 대표적이다. 나이에 따라 달리 부르는 호칭이 없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말들을 그대로 가져가 쓴다, 노래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관계성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가 반영돼 ‘연습생(Yeonseupseng)’이나 ‘띠동갑(Tteedonggab)’ 등의 단어들도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용어들이 젊은이들의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확산하면서 자연스레 한국 문화와 한글이 퍼져나가고 있다.

 

한때는 K팝에서 ‘K’가 사라지고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2020년 첫 영어곡 '다이너마이트'로 '꿈의 장벽'이라 불리던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 정상을 꿰차며 판도가 달라졌다. 이후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등 단체곡은 물론 '세븐', '스탠딩, 넥스트 투 유'(정국) 등 솔로곡까지 '핫100'을 비롯한 유수의 글로벌 차트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본 이들은 앞다퉈 영어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블랙핑크 제니의 '유 앤 아이', 피프티피프티 '큐피드', 르세라핌 '퍼펙트 나이트', 엔믹스 출신 지니의 '커먼', 선미의 '캄 마이셀프' 등 한국 가수들의 100% 영어곡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K팝이 "주류로 가기 위해 K팝에서 K을 떼어내야 할 때"라고 역설했던 기획자의 말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한국어를 넘어선 노래들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K팝이 영어 등 국제어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 말과 글이 더 많이, 자주 전해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K팝의 지구촌(글로벌)화일 것이다.

 

 

과거에 우리들은 라디오만 틀면 팝송이 흘러나와 들어야 했던 시대를 살았다. 번안곡이 성행했고, 사람들은 영어 가사를 따라 부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국내 가수보다는 비틀스와 뉴 키즈 온 더 블록 같은 팝 가수를 동경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 어디에서든 케이팝이 들리는 시대가 도래했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최고 권위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에 섰고, 블랙핑크는 아시아 여성 가수 처음으로 빌보드와 영국 공식 차트의 주요 부문을 석권하는 역사를 썼다. 이번 ‘케데헌 현상’이 이러한 큰 흐름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케이팝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한국 문화와 한글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이 늘어났다. 2020년 한국관광공사가 케이팝 나라 밖 팬 12,66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63.8%(복수 응답)가 케이팝 외에 한글과 한국어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케이팝이 한글을 널리 홍보하는 으뜸 한글 전도사가 된 셈이다.

 

 

세계 음악 시장에서 케이팝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나라 밖 가수의 노래에도 한국어 가사가 등장하고 있다. 팝스타 두아 리파와 마마무 화사의 ‘피지컬(Physical)’에서는, 화사가 “이 밤은 흘러가고 / 더는 숨기려고 해도 의미 없어” 등 한국어 가사로 자신의 부분을 부르고 후렴구를 지나 두아 리파가 영어로 이어받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미 음악이 주류가 된 팝계에서 한국어는 찾아보기 힘든 이질적인 언어였지만, 이제는 케이팝 스타들이 모국어인 한국어로 피처링을 하거나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합작/협업곡을 내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2020년 겨울, 방탄소년단의 지민이 팬들에게 선물로 발표한 자작곡 ‘크리스마스 러브(Christmas love)’를 들은 나라 밖 팬들은 한국어 단어 하나와 사랑에 빠졌다. 바로 ‘소복소복’이다. 노랫말을 들은 나라 밖 팬들은 ‘소복소복’이란 단어의 어감이 귀엽다며, 이 단어의 뜻을 궁금해했다. 그러자 한국의 방탄소년단 팬들은 “‘소복소복’((falling falling, soboksobok)은 커다란 눈송이가 아주 온화하게 아름다운 눈 침대를 만들며 바닥에 내려앉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을 들은 나라 밖 팬들은 “falling, falling(내린다, 내린다)은 ‘소복소복’을 표현하기에 너무 제한적인 말이다.”, “내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까닭이다. 나라 밖 아미들은 한국어를 하는 사람에 견줘 방탄소년단의 콘텐츠를 반만 경험한다.”, “한국어는 너무 아름답다. 한국인들이 부럽다.” 등의 반응을 남겼다.

 

이같이, 케이팝을 접하고 한국을 사랑하게 되어 한글과 우리말을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글문화연대는 누리집에서 전하고 있다. 특히 유튜브에서는 케이팝 소재를 활용한 한국어 교육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단다. 구독자 100만 명이 훌쩍 넘는 유튜버 ’한국언니(Korean Unnie)’는 케이팝과 한국어 공부를 접목한 영상을 올리고 있으며, ‘케이팝과 함께 배우는 한국어(Learn Korean With K POP)’라는 영상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 등의 매체는 각 나라를 구분하는 문화 장벽을 깨트렸고, 케이팝은 국경을 넘나드는 매체를 바탕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케이팝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장르가 되었다. 그런 만큼, 올바른 한국어를 쓰는 것도 중요해졌다.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을 지양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널리 알릴 수 있게끔, 케이팝 가수들과 소속사, 그리고 음악을 향유하는 대중들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간과 낙엽’이란 노래에 나오는 ‘맨발로 기억을 거닐다 날 에워싸는 단풍에 모든 걸 내어주고 살포시 기대본다’ 같은 서정적인 가사 등 우리 말의 시적이고도 예쁜 표현들을 어떻게 살리고 알리는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케데헌’의 감독 매기 강은 다섯 살 때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녀가 다닌 캐나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지도에서 한국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이 애니메이션의 성공으로 그렇게 한국을 모르는 일은 없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을 모른 것에 울분을 느낀 매기 강이 9년 이상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매달리며 한국의 신화와 설화를 탐구하며,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이야기를 “매우 한국적인 입과 눈 모양”을 곁들인 걸크러시에 기반해 만들려 노력한 결과 세계는 한국과 한국의 말과 한국어의 글자인 한글을 알게 되었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뮤직비디오 등에서도 한국이 전해진다, 우리에게 한글날은 한글의 우수성만을 외치는 날이 아니라 우리 말과 글을 동시에 생각하는 날이다. 우리말을 기록하는 글자 한글은 그 과학성이 오늘날 컴퓨터와 휴대전화 문자 입력 체계의 우수성으로 증명된 바 있다. 누리소통망 시대에서 한글의 위대함이 더욱 빛난다. 글자로서 한글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우리 말의 아름다움, 나아가서는 우리 한국인들의 사상과 생각과 철학이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자는 날이다. 그렇게 해서 골든 노래의 후렴처럼 ​

 

“우린 빛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That’s who we’re born to be)

“영원히 깨질 수 없이” (Forever unbreakable)

“밝게 빛나는 우리” (Shining brightly, we are)​

 

가 되어야 할 것 같다. 2025년 맞는 한글날은 말과 글 두 가지 모두에 있어서 정말 특별한 날이다.

 

 

덧붙이기 : 그리고 “아이돌이 알리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돌민정음’은 어감이 좋지 않으니 이제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계에 전해진 바른 소리”란 뜻의 '애인정음', 더 나아가서는 “세계 만민들이 즐겨 사용할 바른 소리”라는 뜻의 ‘만민정음’이란 표현을 쓰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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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