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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토박이말 이야기

살얼음 낀 산타마을

[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살얼음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온 누리가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예수님오신날 앞날 아침입니다. 하지만 오늘 들려온 먼 나라 핀란드의 기별은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바람만큼이나 차갑고 쓸쓸합니다. 산타클로스가 나고 자란 곳으로 알려진 로바니에미의 하늘에 썰매가 아닌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땅에는 방공호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꿈과 사랑이 머물러야 할 그곳이 전쟁의 두려움으로 얼어붙었다는 기별에 마음 한구석이 시려옵니다. 오늘 이런 안타까운 기별을 보고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은 바로 '살얼음'입니다.

 

'살얼음'은 '살'과 '얼음'이 만나 이루어졌는데요, 여기서 '살-'은 '오롯하지 못한' 또는 '살짝'이라는 뜻을 더하는 앞가지(접두사)입니다. 푹 삶지 않고 살짝 삶는 것을 '데삶다'라고 하듯, 물이 꽁꽁 얼지 않고 얇고 여리게 언 됨새(상태)를 '살얼음'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살얼음'을 '얇게 살짝 언 얼음'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꽁꽁 언 얼음은 '매얼음'이라고 하니, 우리 토박이말의 맛이 참으로 남다르지 않나요?

 

 

이 말은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먹고 살기 어렵고 추웠던 그 살얼음 같은 날들을 견디게 해준 따뜻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쓰였습니다. 박노해 님의 가락글(시) <그 겨울의 시>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 어린 나를 품어 안고 /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윗목에 놓인 물그릇에 살얼음이 얼 만큼 추운 방이지만, 할머니의 품만큼은 그 무엇보다 따뜻했을 것입니다. 살얼음은 차갑지만, 그 아래에는 아직 얼지 않은 물이 흐르고 있고, 그 위에는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숨결이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애틋하고도 조심스러운 말을 우리 나날살이에서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앞서 본 핀란드의에서 온 기별에 있었던 딱딱한 한자말을 갈음해 다음과 같이 써보면 어떨까요? "산타 마을에 군사적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는 말을 "전투기가 나는 산타 마을은 요즘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깨질 듯 아슬아슬한 그곳의 모습이 훨씬 더 마음에 와닿지 않으신가요?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 서먹해진 사이에서 마음의 골이 깊어질 때,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라고 하기보다는 이렇게 말해보는 겁니다. "우리 사이가 꼭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네요. 서로 조금만 더 따뜻하게 보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또,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글을 올릴 때 써도 좋겠습니다. 얇게 언 냇물이나 서리 내린 모습을 담은 찍그림(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남겨보세요. "마음에 살얼음이 낀 듯 시린 날이지만, 이 얇은 얼음장 밑으로도 봄은 오고 있겠지요?" 읽는 이들의 마음까지 잔잔하게 어루만져 줄 것입니다.

 

살얼음은 얇아서 쉽게 깨지지만, 그렇기에 햇살이 비치면 가장 먼저 녹아내리기도 합니다.  땅별마을(지구촌) 곳곳에, 그리고 우리 마음에 낀 살얼음도 따스한 사랑으로 얼른 녹아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