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12월 중순 조지 포크가 사경을 헤매던 중 고종이 보낸 관리를 만난 것은 12월 13일이었다. 그 날짜 일기다.
12월 13일
8시 19분 주막(경기도 이천)을 나섰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날씨가 카랑하다.(쇳소리처럼 높고 맑다) 4리 정도를 간다. 언덕을 넘는다. 가마꾼들이 흔연하다. 그들이 견뎌내는 게 내겐 경이롭다. 길 위에 농부 몇 명이 보인다.
10시 2분에 5분 동안 휴식을 취하다. 좁은 골짜기를 내려간다. 나무가 많다. 가마꾼 턱수염 위에 얼음이 맺혀 있다.
11시 48분 어떤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다. 가마꾼들이 술을 마신다. 길이 양호하고 평탄했다. 하지만 인적은 드물다.
12시 38분 길가에서 휴식. 이곳까지는 길이 내내 좋았다. 우리는 지금 북서쪽으로 뻗은 골짜기 안에 있다. 금릉위 박영효가 그저께 인천의 일본인 거류지에서 서울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길에서 들었노라고 수일이 말한다.
1시 36분 출발한다. 곧 저쪽에서 큰 외침 소리가 들린다. ‘어명이다. 멈춰라!’. 나의 가마가 내려진다. 겁에 질린 가마꾼들이 얼어붙은 듯 서 있다. 저쪽에선 전양묵이 가마 속의 관리와 무언가 말을 나누고 있다. 돌연히 그가 죽어라고 달려온다. 내 가마 앞에 털썩 주저 앉는다. “임금이 보내신 관리가 왔소!”
이것, 이것이 주님의 길이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관리가 다가온다. 가방에서 원판(circular tablet) 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어명이 새겨진 징표이다. 서울은 위험하므로 광주 산성(남한산성)으로 가자고 관리가 말한다. 보부상과 병사들을 부르겠다고 한다.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이다. 양묵과 수일, 그리고 가마꾼들의 찌든 얼굴이 활짝 펴진다.
이윽고 밀짚모자 사나이들(보부상)이 바람처럼 나타난다. 나는 관리에게 말한다. 정양묵과 저수일도 나와 같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오후 2시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는 기뻐 왁자지껄하며 나아갔다. 그런 다음 나는 가마꾼들을 쉬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파김치가 되어있지만, 뜻밖에도 쉬지 않겠다고 한다. 벌어진 가마꾼들의 큰 입을 보니 즐겁다. 그간 축 처져 있던 침울한 입꼬리가 이제는 크게 벌어져 올라가 있다. 행동거지도 일변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살금살금 옆으로 이동하면서, 구걸하는 듯한 목소리로 “…주쇼 ”, “쫌…”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강하고, 당찬 목소리로 “에라(Yera)”( 길을 비켜라)를 우렁차게 외쳐댄다.
우리는 빠르게 나아간다. 3시 30분 막 산성길로 접어들자, 주막에 들어간다. 관리는 무척 친절하다. 뭘 먹고 싶냐고 묻는 등 자상하다. 관리에 의하면, 민 참판(민영익)은 병세가 위중해서 살아나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왜놈으로 오인되어 몇 차례 공격을 받았고 여비도 떨어진 조지 포크는 어명을 받든 관리의 보호로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