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는 해시계 등으로 시간을 측정하여 파루와 인정을 침으로써 성문을
열고 닫았습니다. 그런데 파루를 치던 군사는 격무에 시달려 졸다가 파루·인정
칠 시간을 놓쳐 매를 맞는 경우가 자주 있었지요. 그때 세종임금은 그것이 꼭
군사의 잘못만은 아니라며 장영실을 시켜 자명종 시계(자격루)를 만들게
했습니다. 또 일식이 하늘의 경고라고 보고 구식례(救食禮)를 행하려다 중국에
맞춘 예보가 1각이 늦어 예보관에게 장형을 내리자 그의 잘못이 아니라며
세종이 오목해시계(앙부일구), 혼천의 등 천문기구와 시계를 만들도록 했지요.
그뿐만 아니라 세종 18년(1435년)에는 시각장애인 지화에게 종3품 벼슬을
주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관청인 명통사에 쌀과 콩을 주어 시각장애인을
지원한 기록도 있으며, 장영실은 관노였지만 세종이 정4품 호군까지
올려놓았습니다. 백성사랑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한 절대군주 세종임금은 이렇게
따뜻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