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계천을 조선시대엔 ‘개천’이라 불렀습니다. 이 개천은 비가 많이 오면 넘치고, 좀 가물면 말라붙었으며, 각종 쓰레기는 물론 아이의 시체까지 버려 환경오염이 말도 못했다 합니다. 그래서 1760년 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영조임금은 ‘준천(濬川)’ 즉, 개천 바닥을 파내는 큰 공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영조임금은 이 공사를 하기 위해 벼슬아치뿐 아니라 개천 주변 주민들의 의견을 수십 차례 들으며 진행했기에 주민들과의 마찰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자원봉사자만도 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또 개천 주변에는 갈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을 쫓아내지 않고, 공사에 참여해 품삯을 받도록 했으며, 택지를 만들어 살도록 한 것은 물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말썽이 끊이지 않는 청계천복원공사의 담당자들이 이 영조임금의 정책을 새겨들어 슬기롭게 진행해나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