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이 연지는 대단한 사치품이어서 상류층 부인들만 사용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세종실록(9년 2월조)에 잇꽃이 희귀하므로 연지를 금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사간원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연지 찍기는 우리만이 아니라 흉노족 그리고 몽골족들과 함께 티베트계 유목민족인 탕구트족도 좋아했다고 하지요.
그럼, 연지와 곤지는 왜 찍었을까요? 그것은 붉은색이 잡귀를 물리친다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문지방과 문설주에 뿌리는 것, 중양절에 붉은 산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는 것, 산간지방에서 전염병 예방을 위하여 곤지를 찍거나 붉은 색종이를 오려붙이는 것도 붉은 빛깔이 귀신을 물리친다는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마을제사[洞祭]를 지낼 때 제관으로 뽑힌 사람의 집앞에 황토를 뿌리는 것, 아기를 낳았을 때 대문 앞에 금줄을 치는데 이때의 붉은 고추도 같은 믿음입니다. 이제 혼인을 하는 신부가 연지곤지를 찍는 일은 없지만 그 유래만은 알아두면 좋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