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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23. ≪삼국유사≫를 지키고 끝내 스님이 된 곽영대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인정받습니다. 국보 제306호로 지정된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고승 일연(1206∼1289)이 75살이던 충렬왕 7년(1281)에 편찬한 역사서이지요. 그런데 그 삼국유사를 오늘날까지 지켜낸 이가 있습니다.

차를 즐겨 마시고, 언제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던 고 이병직 선생은 내시화가로 유명한 분이었지요. 그 이병직은 '쌀 7,000석 꾼'으로 불린 갑부였는데 자유당의 농지개혁으로 땅을 잃은데다가, 교육사업에 거액을 투자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어 끝내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그 뒤 이병직은 세상을 뜨기 직전 양손자 곽영대에게 평생을 사모았던 ≪삼국유사≫, ≪제왕운기≫(보물 418호), 청동(靑銅)은입사향로(보물 288호) 등을 내놓으면서 "형편이 어렵거든 팔아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곽영대는 셋방살이를 전전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거액을 제시하며 팔라는 사람들의 유혹에 휘말리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고 겨레의 혼이 담긴 유물들을 단지 생활이 어렵다고 함부로 내다 팔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가난으로 고통이 조여오자 삼국유사를 껴안고 여러 번 울었다고 곽영대는 고백합니다. 훗날 곽영대는 “도혜”라는 법명으로 불가에 귀의하지만 삼국유사는 이렇게 지켜진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걸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