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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만파식적을 음반으로 공연으로 들려준 이삼스님


만파식적을 음반으로 공연으로 들려준 이삼스님
대금정악 전곡 음반 출시 기념 이삼스님 대금독주회 열려

 

  ▲ 외팔로 대금 연주를 하는 이삼스님     © 남지우


“만 가지 근심이 출렁이고 있어요.
속 깊이
바람을 넣어 내 몸을 덥혀 주어요.
내려앉은 어둠을 밀어내 주어요.”
 

위는 김인숙 시인의 “만파식적”이란 시 일부이다. 신라시대 적병도 물리쳤다는 이 “만파식적”은 이 시대에도 저 시인의 소망처럼 내려앉은 어둠을 밀어내 줄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이 가능한 소리를 들려준 이가 있으니 바로 이삼스님이다. 스님은 두 팔로도 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대금을 외팔로 연주하는 음악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0호 예능보유자 녹성 김성진 선생으로부터 대금을 배우고, 궁중 정악의 대가들에게 두루 공부했으며, 85년 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해 금상을 타기도 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한 포교를 하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탓에 오른팔은 마비되고, 대금 연주의 희망은 사라졌지만 이 비극적 삶에 마침표를 찍고, 스님은 외팔로 연주할 수 있는 대금과 그 연주법을 개발해낸 것이다. 

대금은 이름하여 “여음적”. 여음적은 서양 관악기처럼 외팔의 다섯 개 손가락만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대금에 키(key)와 보조키를 붙여 만들어진 것으로 그 뜻은 넉넉한 소리일까?

   ▲ 이삼스님이 외팔로 연주할 수 있게 개량한 대금 '여음적'     © 김영조



▲ 대금정악 전곡 연주음반 표지    


각고의 노력 끝에 스님은 대금정악 전곡을 14장의 음반으로 냈다. 큰돈이 들어가는 제작비 때문에 음반사를 끼지 못하고 직접 제작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 음반작업에는 거문고 이오규 용인대학교 교수, 가야금 송인길 전 국립국악원 정악단 예술감독, 피리 곽태규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해금 윤문숙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 장구 사재성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등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이 함께했다.  

이 대금정악 전곡 음반 출반기념으로 지난 10월 2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최종민 동국대 예술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이삼스님 대금독주회가 열렸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앞서 정태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대금정악 전곡을 음반으로 낸 것은 정말 대단한 일로 모두가 크게 축하할 일이다. 그리고 오늘 이삼스님의 대금 연주는 저 신라시대의 만파식적처럼 이 시대의 어려움을 잠재우는 최고의 음악이 될 것이다.”라고 인사를 했다. 전 전 대변인은 지난해부터 1년여 동안 이삼스님이 주도로 매달 연 일요풍류회에 거의 거르지 않고 참여할 정도 푹 빠졌으며, 그 인연으로 이번 연주회를 위해 물심양면 온 정성을 쏟았다고 스님은 말한다. 

연주는 먼저 대금독주 “청성 자진한잎”부터 시작했다. “청성 자진한잎”은 한국의 전통 성악곡인 가곡을 기악곡 화한 변주곡으로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회팔선(會八仙)’이라고도 한다. 잔잔하고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음악이 예악당을 감싼다. 일거에 청중들을 숨죽이게 한다. 누구나 감동으로 휩싸 안게 하는 이 음악은 그래서 정악대금의 대표곡이라 하는 모양이다.


            ▲ 외팔로 대금 연주를 하는 이삼스님     © 남지우



▲ 함령지곡을 연주하는 모습 / 왼쪽부터 윤문숙(해금), 이삼스님,
곽태규(피리), 사재성(장고)     © 남지우



이어서 대금독주 변조두거, 거문고 김선한과 장고 사재성이 함께하는 도드리-하현도드리, 대금독주 평조회상 상영산·우조 삼수대엽 등이 청중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그 어렵다는 정악대금을 편안하게 연주하는 스님의 마력이 기가 막히다. 사회자 최종민 교수는 “스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치열한 모습으로 온몸을 던져 대금정악을 완성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라고 평가한다.  

계속해서 송인길의 가야금과 함께하는 세령산-가락덜이, 장고(사재성)·피리(곽태규)·해금(윤문숙)과 함께하는 함령지곡, 대금독주 수룡음 농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것은 가곡 태평가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준보유자 이동규(남창)와 보유자 김영기(여창)가 함께 부르는 태평가는 이 시대 어려움을 겪는 세상 사람들에게 큰 덕담이 되었을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김경보(74) 씨는 이날 공연을 보고 “오랜만에 마음을 다스려주는 공연을 보았다. 국악 그중에도 정악이란 음악을 막연히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 겨레 모두는 물론 세상 사람들이 이런 음악으로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매우 흐뭇해했다.

           

▲ 세령산-가락덜이를 연주하는 송인길(가야금)과 이삼스님  © 남지


▲ 여음적 연주삼매경에 빠진 이삼스님     © 남지



스님은 전곡 음반 출시와 기념독주회를 연 소감을 묻자 “그저 덤덤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스님은 "솔직히 음반을 내놓고 독주회를 끝내고 나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다만, 전곡 음반을 낸 것은 요즘 연주자들이 옛 스승들의 가락을 잘 모르는 까닭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연주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후학들을 위해 그래서 그런 가락을 보존할 필요를 느껴 작업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젓대라고도 부르는 대금. 어쩌면 그 소리는 사람의 내면 저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소리일 것이다. 나를 깨우기도 하고 잠재우기도 하는 그런 소리. 나는 그 소리에 이날 깊이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