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여유당이라고도 함) 정약용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복암이 일찍이 선중씨의 집에 칠실파려안을 설치하고, 거기에 비친 거꾸로 된 그림자를 취하여 화상을 그리게 했다. 공은 뜰에 놓은 의자에 해를 마주하고 앉았다. 털끝 하나만 움직여도 초상을 그릴 길이 없는데, 흙으로 만든 사람처럼 굳은 채 오래도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선에 사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정약용 등 실학자들이 현대 사진기의 전신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 바늘구멍상자)를 ‘칠실파려안’이라 이름 붙이고 연구했던 때로 봅니다. 여기에서 ‘칠실(漆室)’은 ‘매우 캄캄한 방’, ‘파려(玻瓈)’는 ‘유리’, ‘안(眼)’은 ‘보다’로 '캄캄한 방에서 유리렌즈를 통해서 본다'라는 뜻인데 이 기구는 바늘구멍상자의 유리에 비친 화상에 종이를 대고 그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