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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85. 추사는 유배지에서 인생을 긍정하는 법을 배웠다


추사 김정희는 우리나라 최고 명필로 꼽힙니다. 하지만, 그 명필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조·형조참판을 지낸 추사는 54살에 동지부사가 되어 연경으로 떠나기 직전 10여 년 전 일어났던 ‘윤상도 옥사 사건’이 다시 불거져 제주도로 유배를 가야 했지요. 험난한 유배지 생활은 귀하게 자란 한양 양반이었던 추사에겐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일 수밖에요. 좁은 방안에는 거미와 지네가 기어다녔고, 콧속에 난 혹 때문에 숨 쉬는 것도 고통스러웠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혀에 난 종기 때문에 침을 삼키는 것조차 힘든 날,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편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이런 힘겨운 삶 속에서도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서법을 연구했으며 한국 비문과 중국의 비문 속 필체를 연구했지요. 유배지에서 그는 화가 날 때에도 붓을 들었고 외로울 때에도 붓을 들었음은 물론 슬프고 지치고 서러움이 복받칠 때도 붓을 들었으며 어쩌다 한 번씩 받게 되는 반가운 소식이 올 때에도 지체하지 않고 붓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비로소 인생을 긍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자신에게 엄습해오면 몸부림치지 않고 받아들인 그였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을 삭히고 곰 삭혀 온전히 발효시킨 내공을 글씨 속에 쏟아 부었으며 포기하고 싶은 세월을 붓질로 버텨 나갔던 거지요. 미술사학자 조정육 선생은 말합니다. “그 세월 속에서 부서질지언정 휘지 않는, 탱자나무보다 단단하고 꼿꼿한 글씨가 탄생했다. 자신의 날카로움을 더 날카롭게 갈고 닦아 한라산 고목처럼 뼈대만 남게 만든 글씨. 죽었으되 죽지 않고 물기만을 빼버린 채 천 년을 버티고 선 주목 나무 같은 글씨. 그것이 유배지에서 탄생한 김정희의 추사체였다.”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