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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89. 처마 밑에 묻힌 은덩어리, 되묻어버린 까닭


<황성신문>에 '시일야 방성대곡'이라는 사설을 발표했던 하지만 뒤에 친일파로 변절하여 독립유공자로서 받았던 훈장이 취소된 장지연이 쓴 ≪일사유사(逸士遺事)≫ 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중인을 비롯한 하층민들의 전기를 모아 엮은 것으로 기인(奇人)·화가·문인·효녀 같은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였는데,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려는 흔적이 엿보입니다. 
 

그 일사유사에 김학성이라는 사람의 어머니에 대한 일화가 실려있지요. 어머니는 비 오는 어느 날 처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듯 약간의 울림이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그 처마 밑을 파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커다란 가마솥이 나오고 가마솥 안에는 은이 가득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난리가 많아서 재물이 있는 집에서는 그것을 은으로 바꿔 땅속에 묻어두는 것이 예삿일이었다지요. 그래서 할 일 없는 사람을 빗대어 “강화섬에 가서 빈산이나 뒤져라.”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어머니는 이를 다시 묻어둔 뒤 그 집을 팔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결국 조그만 오막살이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남편 제삿날 식구들을 불러놓고 그간의 사정들을 말했지요. 그리곤 왜 그랬는지 묻는 식구들에게 어머니는 “재산은 곧 재앙이다. 아무 까닭 없이 재물을 얻으면 반드시 재앙이 있는 법이다.”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공돈을 경계했는데 요즘은 공돈은 고사하고 남에게 피해를 줘서라도 돈을 벌려는 사람들조차 흔한 세상입니다. 가난한 살림살이임에도 재물의 유혹에 빠지지 않은 조선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값져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