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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94. 저물어 가는 한 해 ‘우리말 속살’ 들여다보기


1994. 저물어 가는 한 해 ‘우리말 속살’ 들여다보기
   - 일본이야기 작가 이윤옥 소장이 쓴 ≪사쿠라훈민정음≫ -


뗑깡부린다는 말이 간질발작을 뜻하는 일본말 “전간(癲)”에서 온 말임을 아시나요? “신토불이”는 일본이 먼저 쓰던 말을 농협이 가져다 쓴 말이고, “수우미양가”는 일본 사무라이 시대의 목 베기에서 나온 말이며, “혜존(惠存)”은 책을 지은이가 상대방을 높여 쓰는 말이 아니라 책을 받는 사람이 읽고 잘 간직하겠다는 뜻임을 아시는지요? 또 “정로환(征露丸)”은 러일전쟁을 하던 일본이 러시아를 정벌한 약이란 뜻으로 쓰이고, “부락(部落)”이란 말은 일본에서 차별받던 천민마을을 가리키던 말이며 그 밖에 서정쇄신, 국립묘지참배, 전지훈련, 수타국수, 후견인, 선착장, 물의를 빚다, 돌풍 불다, 땡땡이치마, 심심한 애도, 동장군 같은 말이 일본말에서 비롯한 것임을 아시는지요?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쓰던 말들이 일본말에서 나온 것이라니 놀랍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말을 써온 까닭은 그간 이런 말들이 일본에서 들어온 말임을 알려주는 책이나 기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누리집(www.korean.go.kr)의 순화어방과 온라인가나다방을 보면 이 말들이 일본어임을 가르쳐주지 않거나 아니면 순화하라고 하면서도 왜 순화해야 하는지 밝히지 않거나, 심지어는 일본말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또한, 그동안 나와 있는 일본말 찌꺼기 관련 책들은 일본어 말밑(어원)을 모르고 쓴 것이 대부분이라 독자들이 그 유래를 뚜렷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에 일본이야기를 써주시는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님이 ≪사쿠라 훈민정음 (인물과사상사, 2010,11)≫이란 책을 내어 우리가 무심코 쓰는 일본말의 그 말밑(어원)을 명확히 밝혀 줌으로써 독자들의 가려움을 긁어주고 있습니다. 30여 년 넘게 일본어를 연구하고 대학에서 가르치시면서 고민해 오던 일본말 찌꺼기들을 왜 쓰지 말아야 하는지 재미있고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엊그제 이 소장님은 진주MBC라디오와 가진 대담에서 “내가 파악한 일본말 찌꺼기는 7천여 개 이상이다. 이번 ≪사쿠라 훈민정음≫에는 겨우 70개만을 다뤘는데 현재 3권까지 원고를 마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말 찌꺼기뿐만이 아니라 홀태바지를 뜻하는 ‘스키니진’을 비롯한 와이파이(근거리무선망), 소셜코머스(공동할인구매), 선루프(지붕창), 갈라쇼(뒤풀이 공연), 멀티탭(모둠꽂이), 슬로우시티(참살이지역) 등 넘쳐나는 외래어에 대한 우려도 크다.”는 지적도 했지요 

일본말 찌꺼기를 비롯하여 뜻이 모호한 외래어를 줄이고 알기 쉽고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살려 쓰는 것은 겨레의 자존심이며 민족의 정신문화를 바로 세우는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소장님은 ≪사쿠라 훈민정음≫을 세상에 펴내는 뜻을 “올해는 국치 100년이요, 광복 65년을 맞이하는 해로 여기저기서 여러 기념행사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혼이요, 정신인 우리말 속에 독버섯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일본말 찌꺼기에 대한 청산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젊은 엄마가 귀여운 자기 자식 보고 ‘뗑깡부린다(간질발작의 뜻)’를 태연하게 쓰는 이런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이 책을 낸다.”라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미 책을 읽은 독자들은 “책을 한 번 들면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작가는 일본말이니 쓰지 말자고 외치지 않고 나긋나긋하게 어째서 쓰지 말아야 하는지를 역사적 근거와 겨레의 자존심을 들어 재미있게 써 내려가고 있다. 감칠 맛나는 문장과 우리말글에 대한 깊은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심성 고운 우리겨레의 말글살이를 되돌아보고 새해에는 이 소장님의 지적처럼 모두가 우리말사랑의 원년으로 삼게 되길 비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