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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 한국 산타령의 대명사, 황용주 사범의 55주년 기념공연

 

 
 
이달 24일(화) 오후 3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산타령의 예능보유자 황용주(黃龍周)사범이 예악 생활 55주년을 기념하여 발표공연을 펼친다고 한다. 축하의 글과 함께 산타령이란 어떤 음악인가 하는 점을 2회에 걸쳐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길을 걷는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 터에 10년, 20년도 아닌 55년을 오직 경기소리, 그 중에서도《산타령》을 부르며 외길을 살아온 황용주 사범은 후학들로부터 존경과 축하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의 기념공연 무대는 경기소리 전반이지만, 그 중심은 역시 경기 지방에 전승되어 오는《산타령》이 될 것이다. 입창(立唱)형식, 즉 서서 부르는 이 노래는 좌창의 12잡가와 함께 경기소리의 대표적인 노래로 꼽고 있다. 구성악곡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잦은 산타령’을 차례로 부르는 것을 기본 틀로 하는 연창형식의 노래이다.
                 
《산타령》은 예로부터 예인집단에 의해 전승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주로 사찰의 의식이 끝난 후, 산타령과 민요로 일반 대중을 위로하였고, 도시와 농촌에서는 넓은 마당에서 불을 밝히며 참가자들과 함께 즐겼던 노래가 바로 산타령인 것이다.

특히《산타령》은 답교(踏橋)놀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다. 1900년대까지도 서울의 왕십리와 뚝섬을 잇는살고지다리에서는 정월 대보름 답교놀이가 행해졌는데 이날 밤, 서울의 산타령 패(牌)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 목말을 타고 목청을 높여《산타령》을 부르며 밤을 새워 흥겹게 놀았다고 한다. 100년전의 합창 축제를 연상해 보면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성동구민 뿐만이 아니라, 서울시민이 참가하는 축제마당에 율동을 곁들인 합창단원들이 저마다의 기량을 들어내고 여기에 참가한 일반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즐기던 축제의 장에서 부르던 주요 레파토리가 바로《산타령》이었다는 말이다.

경기소리의 대스승 박춘재나 김태운이 전하는 유명 소리패로는 이태문의 뚝섬패를 비롯하여, 이명길이 이끄는 왕십리패, 권춘경이 모갑이로 있던 동막패, 소완준의 과천패, 그 외에도 성북동패, 쇠붕구패, 아오개패, 진고개패, 방아다리패, 배오개패, 자하문밖패 등이 있었다고 하지만, 변화의 물결에 밀려 전문적으로 부르던 선소리패에 의한 연창(演唱)은 이미 맥이 끊어진지 오래 되었다.

《산타령》이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치 않다. 그러지만 사당패의 소리를 세속 음악인들이 개작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창배의『한국가창대계』나 황용주의『한국경·서도창악대계』에는 성경린의 글을 인용하여 “고종때의 명창으로 뚝섬패의 이동운이 있었는데, 그의 선생이 그 유명한 이태문이었고, 이태문의 선생이 신낙택, 신낙택의 선생이 종대, 종대의 선생이 이의택” 이라고 적고 있다.

이는 물론 박춘재를 비롯한 원로 선소리꾼들의 구전(口傳)에 의한 것이다. 이 전언에 의한다 해도, 1800년대 말의 이동운으로부터 그 위의 태문-낙택-종대-의택 등 4대의 선생을 거슬러 오른다면 줄잡아 1700년대 말이나 늦어도 1800년 초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산타령이 불렸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앞산타령’이나 ‘뒷산타령’ 또는 ‘자진산타령’과 같은 악곡의 이름이 문헌에 등장하는 시기는 잡가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10년~1920년대이다.
이 시기의『증보신구잡가增補新舊雜歌』를 비롯하여『고금잡가편古今雜歌編』『무쌍신구잡가無雙新舊雜歌』『신구유행잡가新舊流行雜歌』『증보신구시행잡가 增補新舊時行雜歌』등에는 선소리《산타령》의 여러 악곡명이 들어있어서 그 시대의 대중적인 노래로 자리매김해 왔음을 알게 한다.

 참고로 이 시기의 잡가집 대부분은 가곡, 가사, 시조 등 오늘날 정가로 분류되고 있는 노래들을 비롯하여, 《산타령》을 위시한 민속가의 대부분, 예를 들면 초한가를 비롯한 서도소리나 육자배기를 비롯한 남도소리도 들어있고, 유산가를 비롯한 경기잡가와 민요도 들어있으며, 단가나 회심곡 등, 그야말로 성악의 전 장르를 망라한 노래들이 잡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특정 장르의 노래만이 아닌,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종합적으로 싣고 있기에 책의 이름도 ‘여러 노래의 모음집’이란 뜻에서 잡가(雜歌)로 명명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잡가란 현재와는 달리 그 당시 대중들이 즐겨 부르며 유행시켰던 노래의 총괄 명칭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전승과정이나 명인들의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