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김연갑씨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서 찾아낸 일본 신문 ‘유우빈호우치신분(郵便報知新聞)’ 1894년 5월 31일자에는 ‘조선의 유행요(朝鮮の流行謠)’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1894년 당시의 아리랑 노랫말에 “왜인(倭人) 등쌀에 나는 못살아”처럼 노골적인 반일 감정이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아리랑은 구한말 민중들의 일본에 대한 저항가였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30~1940년대 중국에서의 항일투쟁은 이주 동포사회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했습니다. 일본군 토벌대와 독립군들과의 처절한 투쟁에서 아리랑은 투쟁의 한 무기 즉, 암호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리랑은 일제침략과 항일투쟁에 아주 밀접한 노래로 겨레의 노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결과로 요즘 남북한 체육대회에서 합동응원가로 쓰이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