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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500. 강세황, 꽃이야 붓으로 그려 피우리라

[얼레빗=김영조 기자] “저 사람은 누구인고? 수염과 눈썹이 새하얀데 머리에는 사모(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를 쓰고 몸에는 평복을 입었으니 마음은 산림에 가 있으되 이름은 조정의 벼슬아치가 되어 있구나. 가슴 속에는 수천 권의 책을 읽은 학문이 있고, 또 소매 속의 손을 꺼내어 붓을 잡고 휘두르면 중국의 오악을 뒤흔들만한 실력이 있건마는 사람들이 어찌 알리오. 나 혼자 재미있어 그려봤다!”


   
▲ 사모를 쓰고 평복을 입은 강세황 자화상

위는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로 문단과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이 자화상을 그리고는 스스로 쓴 화제(題, 그림 위에 쓰는 시문-詩文)입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60년을 벼슬 한 자리 하지 못했어도 스스로 대단한 학식과 포부가 있다고 생각하며 절치부심 자신을 닦았습니다. 그는 “올해는 봄추위 심하여(今歲春寒甚) / 복사꽃 늦도록 피지 않았네.(桃花晩未開) / 정원의 나무들 적막하지만(從敎庭樹寂) / 꽃이야 붓으로 그려 피우리라(花向筆頭栽)“라는 <도화도(桃花圖)>라는 한시를 지었습니다. 꽃이 피지 않아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붓으로 꽃을 그린다는 마음가짐으로 꿋꿋하게 살아간 것입니다.

그러다 영조임금이 그의 아들에게 “네 아버지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점잖은 선비가 그림을 너무 좋아하다가 흠이 잡힐 수 있으니, 너무 몰두하지 말라고 전하거라.”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감격하여 며칠을 울어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벼슬도 못한 그를 임금이 챙겨주는 것에 감동한 것이지요. 그 뒤 그는 영조가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붓을 들지 않았습니다.

   
▲ 마음의 평화가 그득한 <연강제색도(烟江霽色圖)>, 도쿄국립박물관

올해 탄생 300돌이 되는 강세황은 보통 물러나 쉴 나이인 61살에 정조임금의 배려로 노인과거를 보고 장원급제한 뒤 능참봉(왕릉을 지키는 벼슬)으로 시작하여 6년 만에 정2품 한성부판윤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지요. 강세황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푸른솔은 늙지 않고 학과 사슴이 일제히 우는구나.”라는 글을 쓴 다음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푸른솔처럼 자신의 예술이 영원히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원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는 6월쯤 국립중앙박물관이 표암의 작품 100여 점으로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많이 가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