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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에서 <고도리>는 무슨 새인가요?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16)]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저희 집 식구들은 모두 고스톱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세 사람만 모이면 바로 패를 돌리구요, 손님이 왔을 때도 분위기가 좀 어색하다 싶으면 바로 손님 앞에 카키색 군담요를 깝니다. 고스톱의 매력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예요. 고도리는 새를 말하는 건 알겠는데 화투에 새가 한두 마리가 아니잖아요! 고도리는 무슨 새를 말하는 것인지.. 이게 궁금하네요!! 고도리는 무슨 새에요?  -다음- 

 <고도리>에 대해 쓰려고 예문을 찾다가 누리꾼의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고도리>는 무슨 새 인가요? 라는 질문이 귀엽고 애교스럽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풍경(이를 재미있다고 말해야 할지)은 이 집 식구 셋만 모이면 <고도리>를 친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 고도리의 매력을 말한 부분이다. 이쯤 되면 한국 가정의 문화는 대충 파악된 셈이다. 

자! 그럼 한국인들 셋만 모이면 열광하는 일본문화 <고도리>의 정체를 살펴보자. 어쩐일인지《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고도리가 나와 있다. 단스(서랍장), 자부동(방석) 같은 말은 없으면서 고도리는 웬일? “고도리 (←<일>gotori[五鳥]):「1」고스톱에서, 매조ㆍ흑싸리ㆍ공산의 열 끗짜리 석 장으로 이루어지는 약.「2」‘고스톱’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자못 친절하다. 이런 친절보다는 일제가 화투국((花鬪局)을 항구마다 만들었다고 써주는 게 좋지 않을까?  

   
▲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닌텐도 화투,술,조오리,부채 따위에 새겨진 화투(왼쪽부터 시계방향)

처음으로 일본에 화투가 들어온 것은 16세기이다. 당시 포르투갈인 선교사가 기독교를 전하면서 총, 카스테라와 함께 들여온 것 중에 '가르타'라는 카드놀이가 있었다. 포르투갈 말로 카드게임을 가르타(carta)라고 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1573년에는 이미 일본에서 가르타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풍신수길은 서민들의 카드놀이를 금지해버린다. 가는 곳마다 본업도 잊은 채 가르타에 빠져 있는 백성이 꼴 보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카드놀이에 재미 들린 백성은 막부가 금지하는 가루타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러자 원래 가루타에 있던 그림을 막부 몰래 풀과 꽃으로 디자인하게 되는데 오늘날의 화투 모양이 그것이다. 이름도 가루타에서 하나후다(花札)로 바꿔버렸다. 그 뒤 700년간의 무신정권을 청산하고 문신정치를 부활시킨 명치정부는 화투금지를 풀어주는 대신 화투 만드는 공장에 세금 폭탄을 때려서 하나 둘 공장이 문을 닫아 화투놀이도 그와 함께 사그라지고 만다.

 

한편, 일본 땅에서 시들해진 화투는 한국땅으로 건너오기 무섭게 활화산 같은 인기를 얻게 되어 가정에서, 초상집에서, 술집에서, 공항에서 즐기는 놀이가 되고만다.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 병오년 (1906년, 고종 43년) 내용을 보면 “예전부터 서울과 시골 여러 곳에서 투전(鬪錢)과 골패(骨牌) 같은 도박을 했는데 갑오년(1894년, 고종 31년) 이후 도박은 저절로 사라졌지만 요사이 왜놈들이 서울과 각 항구에 화투국(花鬪局)을 설치했다. 돈을 놓고 도박하여 한 판에 만전도 던지니 아둔한 양반이나 못난 장사꾼들 중 파산하는 자들이 잇달았다.”

 

황현 (1855~1910) 선생은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라는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순국의 길을 걸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내가(벼슬을 하지 않은) 죽어 의리를 지켜야 할 까닭은 없으나, 다만 이 나라가 선비를 키워온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한 날 선비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죽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라는 유서를 남겼다. 화투국(花鬪局)을 염려하던 위인은 가고 오늘 사람들은 온 식구가 고스톱에 젖어 “고도리가 무슨 새냐?”는 질문이나 하고 있으니 씁쓸하기만 하다.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요즈음은 한 분야에 입문하여 10년만 공부해도 “전문인”이 되는 세상이다. 일본어 공부 35년째인 글쓴이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풀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그거 좋다”고 하여 ‘국어사전 속 숨은 일본말 찾기’라는 부제의 책《사쿠라 훈민정음》을 2010년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 책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2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내친김에 일반인을 위한 신문연재를 하게 되었다. ‘말글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애정을 갖고 이 분야에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