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정결한 소와 염소로 선농(先農)에 정성껏 제사하고, 따비와 쟁기로 밭을 몸소 밟으셨습니다(聿躬履於甫田). 빛나고 성대한 의식이 이루어지니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중략) 촉촉한 가랑비 꽃가지의 바람을 재촉하니 / 동쪽 들의 버들이 봄빛을 띠게 됐네 / 황도(黃道)에 먼지가 맑게 걷히니 / 보연(寶輦)에 봄빛이 도네 / 곤룡포·면류관 차림으로 몸소 따비 잡고 밭갈이하여 / 우리 백성들 농상(農桑)에 힘쓰게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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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기질을 할 수 없는 곳의 땅을 고르는 '따비'(왼쪽), 논밭의 흙을 평평하게 하는 '번지' (제주 선녀와 나무꾼) |
이는 성종실록 24년(1493) 음력 3월 10일 기록입니다. 임금이 손수 따비를 들고 농사일을 해보는 일은 농사가 나라의 근본이던 조선시대에는 아주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들녘에는 푸르름이 더하고 논과 밭에서는 농부들이 허리를 펼 새 없이 농사 준비로 바쁠 때입니다. 그러나 따비와 쟁기 같은 농기구를 들고 논밭으로 나갈 농부들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도 기계화가 진행되어 이런 농기구들은 이제 농업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작은 다랑이는 그나마 쟁기를 댈 수가 없어 따비로 이겨야 했다” 송기숙의 ≪녹두장군≫에 보면 따비 이야기가 나옵니다. 농기구 따비는 풀뿌리를 뽑거나 밭을 가는 데 쓰는 기구로 쟁기보다 조금 작고 보습이 좁게 생겼지요. 청동기 시대의 유물에서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따비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논밭의 흙을 고르고 씨를 뿌리기 전에 모판을 판판하게 고르는 데 쓰기도 하는 ‘번지’, 논이나 밭은 가는 ‘쟁기’, 극젱이, 가래 따위 농기구의 술바닥에 끼우는 넓적한 삽 모양의 ‘보습’ 같은 말들은 이제 쓰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해마다 봄이면 농부들은 씨를 뿌립니다. 농기구는 세월에 따라 변하지만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일만은 변하지 않는 인류의 전통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