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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세종대왕 생가 복원 서두르라!

[주장] 세종대왕을 홀대하는 정부를 질책한다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20041029일자 <도깨비뉴스>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 검색 사이트에서 'IT 대왕'을 쳐보면 대다수의 검색사이트에서는 결과물이 수없이 뜨고 있습니다. 언뜻 빌 게이츠 등등 IT 산업과 관련해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또는 세계적인 IT기업 대표자를 지칭하는 말일 듯합니다만, 검색결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IT 대왕'이란 세종대왕입니다 

이 글은 세종대왕을 왜 'IT 대왕'이라 불러야 하는지, 한글이 얼마나 인터넷에 적합한 글인지를 설명하는 모 언론인의 글을 퍼 나르면서 한 말이다. 세종대왕이 후손들의 인터넷 사용을 염두에 두고 한글을 만든 것이야 물론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데는 한글이 엄청난 이바지를 했다는 것이 고갱이이다.  

실제 현대 세계는 IT가 지배를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현대에 한국처럼 작은 나라 그것도 한국전쟁을 치렀으며, 가난했기만 했던 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다가가고, 삼성전자 같은 세계 최고의 IT기업이 나올 정도가 되었으니 이 어찌 대단한 일이 아니랴. 그런데 그 밑바탕을 마련해준 이가 세종임금이라는데 지금 이의를 달 사람이 없다 

   
▲ 세종마을 선포 2주년 기념행사에서 어가행렬 도중 "세종대왕 나신 곳"이란 표지석을 어루만지는 세종역의 김영종 종로구청장

그런데도 지금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준 세종임금에 대해 우리는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만 한다. 대다수 국민은 세종임금의 생일이 언제인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 까닭은 가르쳐주는 이가 별로 없고, 태어난 날 제대로 된 잔치 하나 없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정부가 하는 숭모제도 생가가 아닌 무덤에서 그것도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는 초라한 행사일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생일잔치를 해야 할까? 답은 단 하나이다. 생일잔치는 당연히 대통령이 참석하고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축하하는 형태여야 함은 물론 생가에서 치러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껏 생가는 복원되지 않았다. 그러니 생가해서 생일잔치를 하자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왜 생가는 복원되지 못했을까?  

분명히 세종은 세종실록에 한양 준수방에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그 준수방은 현재 종로구 통인동, 옥인동 일대로 경복궁 서쪽문인 영추문길 맞은편 의통방 뒤를 흐르는 개천 건너편인데, 청운동을 흘러내리는 한줄기 맑은 물과 옥인동으로 내려오는 인왕산 골짜기의 깨끗한 물줄기가 합치는 곳이다.  

당연히 생일잔치는 이곳에서 해야 함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경복궁 전철역에서 북쪽으로 200m쯤 간 길가에 초라하게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 하나만이 달랑 있을 뿐이다. 별로 행적이 없는 사람들도 생가 하나쯤 복원해두는 세상인데 우리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임금 생가 복원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겨우 종로구청의 노력으로 세종마을을 만들고 ()세종마을가꾸기회(조기태 대표)가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복원이 되지 않을까? 복원이 안 되는 것은 정부와 학계의 안이한 생각 때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준수방 터를 꼭 집어서 어디라고 할 수가 없고, 생가 형태를 알 수가 없기에 복원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 몇 년전 서울시 지원으로 열렸던 세종대왕 생가 학술회의 모습, 이때도 학자들의 결론은 "정확한 생가 자리를 확인할 수 없어서 복원 하기는 어렵다."였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이방원 사가는 99간 큰 저택이었다. 사가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인동 어디라도 대부분 준수방 터임을 알 수가 있으며, 정확한 원형을 모른다 해도 조선시대 한옥의 형태로라도 복원하는 것이 맞는 일일 터이다. 

일본에 답사를 가보면 그들은 수없이 옛 문화재 복원에 열을 올리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들도 분명한 당시 원형을 알고 하는 것이 아니다. 천 년이 넘었던 때 존재했던 건물이 사진이나 설계도가 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 시비를 걸지 않고, 오히려 그렇게 복원된 건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 일본 50대 왕으로 교토시대를 열었던 간무왕(백제여인의 아들)을 기리는 사당인 헤이안신궁, 당시 자료가 없을텐데도 일본이들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 신궁을 지었다.

최근 정부는 불탄 숭례문을 다시 복원해 놓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어디 그것이 조선 초기 처음 지은 숭례문일 것인가? 형태도 똑 같다는 확증이 없고, 당시의 건축재와는 분명히 다른 건축재를 썼음이 분명하며, 건축 공법도 당시 것이라는 증명이 없다. 그렇지만 숭례문은 복원해야 했고, 그 복원을 나무라는 국민도 없다. 

마찬가지로 세종임금이 태어난 잠저를 어떻게든 복원해야 함은 우리들의 의무일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생일잔치를 무덤에서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가장 위대한 위인의 생가 하나 없다는 외국인의 비아냥거림을 듣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스승의 날에 스승을 생각하고 기리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겨레의 위대한 스승, 세종 임금은 잊혀도 좋다는 말인가? 은혜를 베풀어준 스승에게 그 은혜에 보답은 못할망정 배은망덕 하는 겨레는 되지 말아야 한다. 제발 올 계사년은 세종대왕 생가 복원에 주춧돌이라도 놓는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