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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다구리” 장난이 아니네요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23)]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요즘 김해를 비롯한 보궐선거 과정에서 유시민과 참여당에 대한 집단 다구리장난 아니네요. 민주당과 참여당의 김해 야권단일화 협상을 보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협상입니다. -한류열풍사랑, 다음- "

 

   
▲ 몰매질(다구리)하는 모습 (하로기무비툰 블로그 제공)

 다구리 예문을 찾으니 정치판과 관련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보면 “다구리:「1」(부랑배의 은어로)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을 이르는 말. 「2」(부랑배의 은어로) ‘몰매’를 이르는 말. 「3」(부랑배의 은어로) ‘패싸움’을 이르는 말.” 이라고 풀어 놓았다. 풀이만 보면 우리말 속어 같지만 이 말은 일본말이다. 말밑(어원)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국립국어원 사람들도 말밑을 모르는 모양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노가다는 “노가다(←<일>dokata[土方]) :「1」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2」막일. 「3」막일꾼” 이라고 해서 일본말임을 밝혀 놓은데 견주어 ‘다구리’는 한국말이라도 되는 양 슬쩍 비켜가고 있다. 

일본국어대사전 《大辞泉》에 보면 “なぐる【殴る/擲る/撲る】:1 (こぶしや棒などで)相手を乱暴に強く打つ。2 乱暴に物事をする。”로써 번역하면 “나구루(naguru), 1.주먹으로 상대를 난폭하게 치는 것. 2. 난폭하게 구는 것”이란 뜻이다.

때리다, 패다를 뜻하는 동사 나구루(なぐる)는 명사로는 나구리(なぐり)인데 이것을 우리말에서는 ‘다구리’로 쓰고 있는 것이다.

 

   
▲ 나구리(한국에서는 다구리로 발음) 포스터(2011년 일본 고베시), 재미난 말은 포스터 아래 부분에 '맞기 전에 바른 매너(예절)을 지켜라'는 말!

 사실 우리말은 “때리는 말”과 관련된 말이 많다. 때리다, 갈기다, 패다, 치다, 쥐어박다와 같은 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후려치다, 휘갈기다와 같은 말도 있는데 견주어 일본어에는 나구루(なぐる, 때리다), 우츠(うつ, 치다) 정도가 고작이다.

 왜 그런가 하고 곰곰 생각해보니 사무라이문화(약 600여년)와 유교문화(500여년)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사무라이 문화에서는 단칼로 다스리지만 유교문화에서는 매로 다스린다. 조선시대 사극에서 보면 죄인을 동헌 마당에 끌어내어 몹시 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본 문화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장면이다. 단칼에 끝장을 보이기 때문에 패고 자시고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때리는 것과 관련된 말이 한국어에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말은 문화를 바탕으로 생겨난다. 추운 지방에는 눈(雪)에 관련된 말이 많지만 더운 지방에는 더위와 관련된 말이 많듯 패고, 때리고, 치고, 갈긴다는 말은 우리가 일본 보다 많다. 그럼에도 “뱁새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사복 경찰 몇 명이 뱁새 하나를 끌어다 놓고 다구리를 놓은 사건이 있었다. -황석영, 어둠의 자식들-”처럼 문학작품에서도 쓰일뿐 아니라 한술 더 떠《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마치 말이 우리의 토박이말이나 되는듯 설명하고 있는 게 아쉽다.

뜻도 모르고 쓰는 ‘다구리치다’ ‘다구리당하다’ 보다는 ‘몰매질하다’ ‘몰매당하다’ '때리다''패다'같은 말로 쓴다면 훨씬 알아듣기 편할 것이다.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요즈음은 한 분야에 입문하여 10년만 공부해도 “전문인”이 되는 세상이다. 일본어 공부 35년째인 글쓴이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풀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그거 좋다”고 하여 ‘국어사전 속 숨은 일본말 찾기’라는 부제의 책《사쿠라 훈민정음》을 2010년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 책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2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내친김에 일반인을 위한 신문연재를 하게 되었다. ‘말글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애정을 갖고 이 분야에 정진 중이다.